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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상 만들 거예요
  • 작성일2004-09-06
  • 작성자 / 운**
  • 조회1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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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고사리 손으로 작은 화분에 흙을 담는다. 그 위에 성냥갑만한 물체를 놓고 흙을 마저 조금 더 덮는다. 매일 물을 부어주며 1주일 기다리면 작은 싹이 돋아난다. 계속 돌봐주면 작은 화분 속 갸날픈 생명은 번듯한 식물로 변한다.
1년쯤 지나면 키 10㎝가량의 어린 소나무가 돼 있다. 쉬나무일 수도 있고, 도라지·더덕·할미꽃·매발톱·로즈마리·캐모마일·라벤다일 수도 있다. 종류에 따라 성장속도와 키가 다르다.
이지플랜트 이덕수 개발연구부장(42)은 인스턴트 식품처럼 어디에서나 식물을 발아케 하는 파종립을 만든다. 말 그대로 누구나, 어디에서나 식물을 쉽게 심을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설립한 회사다. 지난해 7월 건국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자원학과 동창생이 모여 세웠다. 사장격인 이부장을 비롯, 박우정(45)·서형민(31)·유재길(28)씨가 창립멤버다. 유씨를 뺀 3사람이 농학박사이며, 모두 이 대학 홍성각 교수의 제자다.
아이디어는 홍교수에게서 나왔다. 아프리카 수단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낙타 배설물 속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귀국 후 1998년 농림기술개발 기획연구 과제로 연구에 착수했다. 이부장 등 박사 3명과 유씨가 각각 연구원과 연구조원으로 참여했다.
이부장은 96년 수목생리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경기 파주시와 경북 영양군에서 농장을 운영했다. 느티나무·벚나무·노각나무·이팝나무 등 관상수를 키웠다. 경기도 임업후계자로도 선정됐다. 농장을 운영하면서 조경회사를 만들어 2년여 경영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전공을 살렸다고 할 수 있지만 공부하면서 품은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농장 운영과 병행해 연구원으로 참여한 과제에서 학창시절의 웅지를 펼칠 가능성을 발견했다. 나무를 심기 어려운 곳에까지 나무를 심어 세상을 푸르게 만들고 싶었다. 파종립은 그런 꿈을 실현하기 매우 적합한 수단이었다. 이부장뿐 아니라 나머지 홍교수의 제자도 같은 생각을 가졌다.
식물을 심는 방법은 직접 씨를 뿌리거나 싹을 틔워 모종을 옮겨 심는 두 가지. 홍교수팀은 전통적인 두 가지 방법에다 파종립으로 심는 새로운 방법을 추가했다.
간단한 개념이다. 종자를 사전 처리한 뒤 혼합배양토에 섞어 초콜릿처럼 찍어낸다. 필요한 곳에 2.5×2.5×1㎝ 크기 직사각형 모양의 파종립을 흙에 간신히 잠길 정도로 묻으면 된다. 실내에서 자연관찰이나 관상용으로 쓸 때 물을 주면 발아한다. 자연상태에서는 비가 내리면 싹이 난다.
넓은 면적에 파종할 수 있고 인력이나 비용이 적게 든다. 보관이 쉽고 다른 식재 방법과 달리 농업 또는 식물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용이하게 작업할 수 있다. 겨울을 빼고 봄·여름·가을 아무 때나 조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식물 종류에 따라 높고 낮은 차이가 있지만, 파종립은 종자를 뿌렸을 때보다 월등하게 발아율이 높다. 싹을 틔운 다음 모종을 옮겨 심는 방법은 구입비용이 많이 들고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다.
2001년 특허를 출원한 뒤 산불피해를 입은 강원 고성군 녹화사업에 파종립을 썼다. 처음 20만개를 파종한 뒤 이듬해 20만개를 추가로 심었다. 녹화에 적잖은 효과를 봤다. 황폐한 땅으로 변한 북한의 산을 녹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북한에 싸리·소나무 파종립을 보냈다. 2003년 1만개를 보내고 올해 15만개를 추가로 전달했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파종립세트(파종립+화분+흙+포장재·4,000∼1만원)는 올해 개발했다. 산림청 행사에 수천개 납품했다. 반응이 좋았다. 아파트 베란다나 단독주택에서 시간이나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식물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위한 미니식물원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파종립으로 싹을 틔울 수 있는 식물은 나무 20여종, 풀 40여종이며 계속 종류를 늘려가고 있다.
이부장은 홍교수 및 다른 동료와 협력해 이지플랜트를 한국을 대표하는 임업전문기업을 키울 생각이다. 이미 첫발을 디딘 북한녹화는 물론 봄이면 한반도를 강타하는 황사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고비사막녹화와 같은 대형 녹화프로젝트를 꿈꾸고 있다. 21세기는 환경이 경쟁력인 시대. 이부장은 \\"환경은 경쟁력에서 머물지 않고 민족과 국가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경향신문/김영민 기자 ahn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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