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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고사리
  • 입상자명 : 이희경
  • 입상회차 : 18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지리산 중턱에 걸어놓은 오선지에 별들이 모여들고 있어요달궁 마을에 음악회가 열리려나 봐요유난히 흥이 많은 물푸레나무가 비파를 키기 시작하네요뿌리까지 귀가 달린 듯 두근거리는 내 울림통

편백나무 숲길로 들어가면 전직이 미용사였다는 수수꽃다리 아줌마가 보여요가끔은 웃자란 풀들의 머리를 잘라주곤 하는데
어제는 참꽃마리가 향기에 취해 조는 바람에 귀에 상처를 낼 뻔 했다네요 그렇지만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건 꽃향기가 아니라 가위 소리였어요내 안에 현으로 된 힘줄이 있는게 분명해요내가 엄마의 주머니 안에 있을 때 귀를 대면 하프소리가 들렸으니깐요 작고 아담한 땅속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태양이 지나가는 자리에 16분음표를 터뜨리죠 그럴 때면 사제비나비 한 쌍이 첫눈으로 착각하고 가슴을 쓸어내릴 때도 있대요

땅속까지 들려오는 울림을 따라 다람쥐 할아비가 살고 있는 나무를 찾아갈래요 그곳에 가면 엄마의 무덤을 볼 수 있으니깐요 산고개 너머에선 눈치 빠른 바람이 한 걸음에 달려와 자고 있는 무덤을 톡톡 건드리네요
뒤따라온 갈퀴나물이 손을 입에 대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요앗!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요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고 있나 봐요비가 와도 삭지 않는 주머니가 허공 속에 숨는 건 주변을 맴도는 엄마의 입김 때문이래요

이제 포자를 떠나보낼 때가 됐네요머리부터 뿌리까지 빨갛게 변하지만
녹슬지 않고 새로 태어나는 거래요

부끄러운 듯 구부리는 손가락에 꽃반지 하나 끼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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