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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숲의 친구가 되고싶다
  • 입상자명 : 최인화
  • 입상회차 : 18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아, 무서워! 으아 아빠 엄마!"
여름숲에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지르는 소리다. 처음 보는 시커먼 곤충들과 벌레들이 내 팔과 다리로 달려들듯이 온다. 내 손바닥 크기 만한 나비도 바로 눈 앞에서 날아간다. 징그럽고 무섭다. 걷는 것이 힘들어 조금 쉬어보려면 어디 앉을 곳도 없다. 땅바닥에 철퍼덕 앉으면 바로 내 옆으로 큰 개미들이 지나가다. 으아악!
'숲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이 산담?'
항상 숲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분도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다. 아빠는 내가 숲에서 울려고 할 때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 고향은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 할아버지가 사셨던 마을 근처 '냉산'에는 도리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곳에 가는 걸 좋아하셨다고 한다. 아빠도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도리사로 갔다.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곤충을 싫어하셨다. 할아버지는 숲에 가서 아빠에게 찰싹 달라붙거나 근처를 다니는 곤충들을 잡아서는 그 이름을 알려주셨단다.
"이건 무서운 뿔같은 게 있지? 이건 왕사슴벌레야. 이건 비단벌레란다. 등이 곱지? 이건 좀 무섭게 보이니? 아빠가 햇빝을 비춰볼게, 어디보자 저기로 가자. 봐, 파란색도 보이지? 이건 황오색나비야. 이건 풍뎅이지."
아빠는 그럴 때마다 그 흉측한 벌레들이 가진 예쁜 이름을 듣고서는 무섭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다들 가족이 있겠지? 아빠 풍뎅이, 엄마 풍뎅이. 이 숲에 모두 소중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지."라며 가족을 찾아주자고 다시 날려보내셨다고 한다.
벌써 수십년 전 옛날 이야기지만 아빠는 숲속에 살아가는 모든 것을 반갑게 맞게 되었다고 하신다. 숲에 있는 까맣고 빨갛고 파란 곤충들은 아빠, 엄마와 나처럼 모두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그때 할아버지처럼 말씀하신다. "곤충들이 살고 있는 숲은 정말 멋지고 씩씩한 녀석이지. 징그럽게 생기고 더럽고 아무 말을 하지 못하는 곤충들에게 다 살아갈 집을 내주었잖아. 아빠는 이 숲이 진짜 근사하다고 생각해."
냉산 도리사에 올라가던 그때를 생각하던 아빠는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또 이야기해주신다.
"아빠가 살던 마을에서 30분을 걸으면 큰 숲이 있었어. 그 큰 숲에는 개울도 있었어. 바지를 걷고 개울을 건너도 대부분 다 젖었어. 한 시간 동안 숲을 헤매면 힘도 들었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거든.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도 있었고 재수가 좋으면 길을 잃은 염소도 마주쳤어."
와, 정말, 숲에 그런 것들이 있었어? 그래 얌전히 붙어 있는 산딸기도 오드드 먹었지. 밤나무에서 밤이 툭툭 떨어졌단다. 아빠가 자랄 때는 먹을 음식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는데 산에는, 숲에는 모든 게 있었어.
아빠가 들려주던 그 말 덕분인지 숲에 가면 나는 무섭지 않다. 가장 먼저 편편한 바위에 올라가서 이 숲에는 어떤 친구들이, 가족들이 사나 살펴보기도 한다. 숲에서 나는 냄새도 좋다.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무더위에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지난 주말 오대산 월정사 숲길 벤치에 앉아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가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싫어했던 곤충들이 내 귀로 들어가 다른 귀로 나와도 몰랐다. 큰 짐승이 다가와도 하나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얼머나 되었을까. 눈을 반쯤 떠보니 다람쥐들이 나무를 타고 숲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꿈처럼 나도 다람쥐가 되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월정사를 굽어보고 있었다.
정말 편하고 따뜻했다. 숲에서는 서로를 밀어버리지 않아도 서로를 무시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행복해 보였다. 숲에서 자고 숲에서 일어나는 숲속 친구들이 부러웠다. 몇년 전에는 비뚤비뚤하고 오르막내리막 길을 걸어다니는 일 때문에라도 싫었던 숲길이 이제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곤충들 덕분에 멋진 아이돌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욕심이 생겼다. 꽃과 나무의 이름을 잘 알고 싶다. 산을 알고 숲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빠에게 곤충의 이름을 설명해줬던 할아버지 같은 사람 말이다.
“저 나무는 전나무란다.” "이 꽃은 원추리야."
우리나라 산과 숲에 자라는 많은 나무들은 제각각 이름이 있다. 나무뿐 아니다. 계절마다 피는 야생화도 모두 자기만의 이름이 있다. 산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면 숲을 걷고 산을 오르는 것이 아주 즐거울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귀한 의미를 갖고 친구가 되듯 가까워진다. 숲속 어딘가의 노래와 이야기가 들린다. 눈도 귀도 입도 편해진다.
나도 숲 박사가 되고 싶다. 생명의 친구가 되고 싶다. 산과 숲이 편하게 우리 곁에 있도록 돕고 싶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아빠가 나에게 말했던 그 소중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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