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속에 오롯이 서 있다 보면 우리는 자연의 배경이 된다. 하늘과 땅, 풀과 나무, 자연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주체가 아닌 배경으로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에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풍요로움을 좋아한다.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자연에서 우리는 오히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전지전능함을 보곤 한다. 그렇다. 우리는 동・식물을 사랑하고, 자연이 가진 에너지에 매료되어 수목원의 문을 두드린 국립수목원 코디네이터다.
지난 23, 24일 이틀 동안 ‘2010년 국립수목원 코디네이터 워크숍’이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이곳저곳 정신없이 오가며 수목원을 지키는 코디네이터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마련된 시간이었다. 우리는 마치 소풍가는 학생들처럼 들떠있었다. 특히 다른 곳의 자연과 만난다는 설렘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다. 두근두근. 그렇게 우리의 워크숍이 시작됐다. 1박2일의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 숙소에 가기 전 우리는 야생의 식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유명산식물원에 들렀다. 아직 자연에 발을 담근 지 얼마 안 된 우
리들에게는 식물과 곤충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놀이터였다. 저마다 하나씩 들고 온 카메라 셔터를 꾹꾹 눌러가며, 알고 있는 식물과 곤충에 대해 서로 얘기 해주며 수목원이 아닌 다른 곳에 우리의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분명 다음에 또 다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지금과 달라진 식물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의 머릿속에 남겨진 이 기억들이 먼저 반응하리라. 그렇게 각자의 눈도장을 찍고 다시 숙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숙소에 도착한 후 우리가 한 일은 다 같이 모여 지난해보다 많아진 코디네이터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보다 훨씬 앞서 자연을 사랑
하고 수목원을 지켜온 선배님이신 각 분야의 전문가 박사님과의 시간을 통해 국립수목원과 곤충, 희귀식물의 보전 등의 내용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식물을 공부하는 우리에게 곤충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곤충에 대해 재밌는 얘기를 듣고 나면, 곤충 연구가 쉽고 재밌어 보인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이럴 때 있나보다.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있을까. 지금의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의 마음과 같다. 그렇게 코디네이터들과 많은 박사님들과의 대화시간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이제야 서로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문득 강원도의 밤이 포천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전날보다 흐트러진 모양새로 두 번째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으로 향했다. 여름의 발왕산은 정말 장관이었다. 말 그대로 하늘에 있는 공원에 온 것처럼, 우리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곳의 자연과 하나 되기 바빴던, 가는 시간이 아까워 그것마저 잡고 싶었던 그곳에서의 짧은 시간은 우리 기억 속에 오랫동안 맴돌고 있을 것만 같다. ‘발왕산’을 떠올리면 발왕산 숲길의 작은 바람이 우리를 추억의 그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수목원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갔던 마지막 워크숍의 장소는 한국자생식물원이었다. 자생식물원으로 향하기 전에 우리는 오대산 전나무 숲길을 거닐었다. 나는 수목원에서도 전시림 숲길과 전나무 숲길을 걷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곳을 걷다 보면 내 기운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전나무 숲길에는 그런 힘이 있나보다.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힘. 자연의 능력이다. 전나무 숲길
을 거쳐 간 자생식물원에서 우리는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메시'에게서 축구공을 뺏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초콜릿을 뺏는 것과 같다고 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자연을 접할 기회를 뺏는 것은 화가에게 붓을 뺏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자연과 하나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쨍쨍한 햇빛에 땀이 흐르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도 잊은 채 자생식물원 곳곳을 누볐다. 어느 때보다 오감이 살아있는 순간이었다. 자연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침묵은 자연과 소통하는 언어이고, 그런 침묵은 우리의 오감을 예민하게 해준다. 우리는 그 곳에서 눈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담고, 귀로 가장 맑은 소리를 듣고, 코로 가장 깨끗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후에 우리가 이곳에서 온 몸으로 느낀 것들이 빛을 발할 때가 오겠지.
1박2일 간 워크숍에서 오감으로 느끼고 배운 모든 것들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난대온실과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의 식물들을 돌보고, 누군가는 곤충 채집을 위해 발 빠르게 뛰어다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식물을 분류하고 연구하면서 수목원의 구성원으로서 다시 힘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번 워크숍은 자연을 벗 삼아 일하고 싶은 우리 코디네이터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워크숍에서 서로 같은 마음으로 자연을 느끼고 배웠던 그 순간만은 가슴 한 구석에 따뜻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아는 것보다는 배울 것이 많다.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훨씬 많은 자라나는 새싹들이다. 이 새싹들이 앞으로도 수목원 곳곳에 발걸음을 남기며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이번 워크숍에서의 추억이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