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19
전시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얼레지, 봄을 사는 풀꽃
 
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각보다 무척 다양합니다. 그중에 대다수가 잠들어있는 새벽에 문 열고 장사하다가 남들이 깨어날 때면 문을 닫고 철수하는 새벽시장의 도매업자 같은 식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른 봄에 생육을 시작해서 상층부가 키큰나무들로 인해 빛이 차단되기 전까지 생활사를 완료하기 때문에 ‘춘계단명식물(Spring ephemeral)’이라고 부릅니다. 복수초, 꿩의바람꽃, 현호색, 산자고, 중의무릇 그리고 얼레지도 짧은 봄날을 살다가 기나긴 휴면에 들어가는 식물입니다.
나무가 그늘을 만들기 전에 서둘러 꽃피우는 얼레지
얼레지의 새순은 붉은색으로 올라옵니다. 그 잎이 작은 상태에서도 꽃을 피울수 있는 어른 얼레지인지, 아니면 어린 얼레지인지 구분이 가능합니다. 잎이 1장뿐이라면 아직 꽃을 피우고 2세를 생산할 수 있을 만큼 자라지 못한 것입니다. 잎이 2장이라면 그 깊은 안쪽에 꽃대를 품고 있을 것이므로 꽃을 피우고 결실까지 가능한 개체입니다.
잎이 1장인 개체
잎이 2장인 개체
잎이 2장인 개체(좌), 잎이 1장인 개체(우)
올해는 3월26일에 얼레지의 새순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작년에 꽃이 피었던 곳을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중에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6일에 꽃이 만개하였고,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꽃 단계를 끝내고 열매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꽃이 지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만 식물에게는 이때부터가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열매 안에 씨앗을 건강하게 키워야하고 그 씨앗들을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주는 것까지 끝내야 합니다.
2020.03.26. 오후2시
2020.03.30. 오후3시
2020.04.06. 오전7시
2020.04.06. 오후3시
2020.04.08. 오전7시
2020.04.20. 오전9시
그런데 문제는 얼레지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3월말부터 5월까지 약 2달 안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동물들과 협업하는 얼레지의 전략이 보여지는데, 꽃가루와 씨앗의 이동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꽃가루를 옮겨줄 파트너인 나비를 위한 맞춤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커다란 보라색 꽃잎과 달콤한 꽃꿀을 준비합니다. 그러면서 수술대를 3개는 길고, 3개는 짧게 해서 방문생물의 몸에 부위별로 꽃가루가 더 많이 달라붙게 했습니다.
길이가 다른 6개의 수술
애호랑나비의 방문
둘째는 씨앗을 옮겨줄 파트너를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얼레지는 개미가 좋아하는 물질인 엘라이오좀(Elaiosome)을 씨앗 끝에 붙여서 개미들이 택배기사처럼 찾아오게 합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일꾼인 개미를 동업자로 둔 것은 현명한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엘라이오좀이 달려있는 씨앗
개미가 몰려있는 열매 (2020.05.25. 오전9시)
비어있는 열매 (2020.05.25. 오후4시)
오전에 개미들이 열매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오후에 확인해보니 열매는 벌어져있고 그 속의 씨앗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래쪽에 떨어진 씨앗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서 개미들이 옮겨주었을 것입니다.
씨앗 산포까지 이루어졌으니 이제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올해는 이것으로 마무리 짓고 얼레지의 시간은 이제 내년 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잘가라 얼레지, 잘가라 나의 봄날!
수목원과
석사후연구원 안은주     임업연구사 윤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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