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3
본격!! 식물 생태와
생물 상호작용
생선인가 꽃인가? 이유 있는 비린내 전략
 
5월 중순, 인적 드문 숲에서였다. 살랑바람에 특이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벌름거려보니 흔히들 머스크(musk) 또는 무스크라고 하는 사향(麝香)처럼 느껴졌다. 가시오갈피의 꽃에서 나는 향기도 사향에 비유하므로 혹시 주변에 가시오갈피가 있나 싶었으나, 개화기가 아니었으므로 다른 나무를 특정해야 했다. 개코를 발동시켜 향기의 진원지를 탐색해 본 결과 발걸음이 멈춘 곳은 회나무 앞이었다. ‘설마 이 작은 꽃에서?’ 하는 의구심에 다른 쪽으로 탐지견의 코를 돌려봐도 도착지는 모두 회나무 앞이었다. 바짝 대고 맡아보니 어성초(魚腥草)라고도 불리는 약모밀의 그 비릿한 냄새가 났다. 생선도 아닌데 꽃에서 비린내가? 좀 전에 어포를 먹은 탐지견의 손이나 입에서 나는 냄새일 수도 있으므로 확인차 회나무의 꽃을 지퍼 백에 넣어두었다가 잠시 후 코에게만 열어주었다. 부둣가에서 뜨다 버린 회 비린내가 올라왔다. 꽃에서 회 비린내가 나다니! 혹시 그래서 회나무인 건 아닐까 하는 말은 너무 아재스러우니까 하지 않겠다. 아무튼 그 비릿한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지면 머스크 같은 다른 냄새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꽃에서는 나고 어떤 꽃에서는 나지 않았다. 좀 더 킁킁거려보니 꽃가루가 나온 싱싱한 꽃일수록 냄새가 진하고, 꽃가루가 나오지 않은 어린 꽃이나 꽃가루가 소진되고 없는 꽃일수록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곤충을 유인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수분(꽃가루받이, pollination) 가능한 상태의 꽃에서만 향기가 나는 것이었다.
회나무(강원도 평창군 선자령 계곡, 2020. 5. 22)

회나무뿐 아니라 같은 ‘회’자 돌림인 나래회나무나 참회나무의 꽃에서도 비린내가 난다. 그래서 이들을 회나무 삼총사로 부를 만하다. 꽃 하면 으레 좋은 향기를 연상하게 되건만, 이들 삼총사는 왜 꽃에서 비린내를 풍기게 되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런 냄새를 좋아하는 곤충을 유인해 수분하려는 전략 때문이다. 일단 벌 종류는 생선이나 회를 좋아할 리 없으므로 회나무 삼총사의 유인 대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회나무 삼총사의 구분은 다음과 같이 한다.
회나무는 대개 5수성이고 열매에 5개의 짧은 날개가 있다.
나래회나무는 대개 4수성이고 열매에 4개의 긴 날개가 있다.
참회나무는 회나무처럼 대개 5수성이지만 꽃이 약간 자줏빛을 띠며 열매에 날개가 없어 매끈하다. 회나무나 나래회나무와 달리 잎이 좁고 날렵한 편이다.
참고로, 4수성이니 5수성이니 하는 말은 꽃을 구성하는 기관(꽃잎, 꽃받침, 수술 등등)의 수가 4나 5 또는 그 배수로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대개’라는 말을 앞에 쓴 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는 뜻이다.
▲회나무의 꽃(대개 5수성)
▲나래회나무의 꽃(대개 4수성)
▲참회나무의 꽃(대개 5수성)
▲회나무의 열매(날개 有)
▲나래회나무의 열매(긴 날개)
▲참회나무의 열매(날개 無)

이들이 속한 화살나무속(Euonymus)의 목본은 서로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 모양의 꽃을 피운다. 국내에 자생하는 화살나무속 목본으로는 화살나무, 참빗살나무, 사철나무, 회나무, 나래회나무, 참회나무, 회목나무 정도가 있다. 향기나 꽃차례 역시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르다. 꽃향기와 꽃차례의 관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화살나무의 꽃에서는 비교적 달콤한 향기가 난다. 그래서 등에 종류 외에 벌 종류도 날아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옆이나 위를 향해 피는 꽃이고 수술에 매우 짧은 수술대가 있다. 꽃차례는 처지지 않고 옆을 향한다.
②참빗살나무의 꽃에서도 특유의 향기가 난다. 옆이나 위를 향해 피는 꽃이고 수술에 비교적 긴 수술대가 있다. 꽃차례는 처지지 않고 옆이나 위를 향한다.
③사철나무도 맡기는 어렵지만, 어느 순간 특유의 향기를 발산한다. 그러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곤충이 모여든다. 그래도 벌 종류의 방문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벌이 아닌 다른 곤충을 유인하는 향기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화반을 핥아보면 단맛이 느껴진다. 파리 종류가 꽃가루를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방문하는 곤충에게 제공하는 보상들(rewards)이다. 위를 향해 피는 꽃이고 수술에 비교적 긴 수술대가 있다. 꽃차례는 처지지 않고 대개 위를 향한다.
▲화살나무의 꽃차례
▲참빗살나무의 꽃차례
▲사철나무의 꽃차례
▲화살나무의 꽃과 방문 곤충
▲참빗살나무의 꽃과 방문 곤충
▲사철나무의 꽃과 방문 곤충

④회나무 삼총사의 꽃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옆이나 아래를 향해 피는 꽃이고 수술에 수술대가 거의 없어 꽃밥이 화반에 붙다시피 한다. 꽃차례가 아래로 늘어져 달리는 점이 특이하다.
⑤꽃의 색이 사뭇 달라서 회나무 삼총사에 끼워주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 적갈색 꽃이 피는 회목나무가 그렇다. 삼총사는 아니니 달타냥이라고나 할까? 개화기도 달라서 회나무 삼총사보다 한 달 늦은 6월이나 돼야 꽃이 핀다. 적갈색은 벌 종류보다 파리 종류가 좋아하는 색이다. 그러므로 파리 종류를 유인하는 데는 회나무 삼총사보다 회목나무가 더 나은 조건을 갖췄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회목나무 꽃에서 파리 종류가 수분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어려워서 그렇다. 꽃차례가 잎 위에 놓이는 점이 특이하다.
회목나무의 꽃에서도 비린내가 나는 점은 같다. 화살나무속 목본 중 ‘회’자가 들어가는 나무는 모두 비린내가 나는 것이니 묘한 우연의 일치다. 화반 쪽을 핥아보면 단맛이 느껴진다. 비린내로 유인한 뒤 단맛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전략이다. 혹시 비린내 나는 단맛일 수도 있다. 수술대가 거의 없어 꽃밥이 화반에 붙는 수술이라는 점도 회나무 삼총사와 같다.
▲회목나무 꽃에 방문한 등에 종류
▲회목나무 꽃 근처를 배회하는 파리 종류
▲회목나무 꽃에 방문한 딱정벌레 종류

짧게나마 20분 정도 관찰한 결과 회목나무의 꽃에는 파리 종류가 날아오기는 하나 꽃 위에 앉는 것을 보기는 어려웠다. 파리의 일종인 등에 종류와 아주 작은 벌레가 와서 수분 관련 행동을 취하기는 했으나 아주 잠깐이었다. 그 외에 오팔색방아벌레로 보이는 딱정벌레 종류가 꽃 위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 것이 전부다.

회나무 삼총사와 회목나무의 꽃이 수술대가 거의 없다시피 한 건 약간 의문이다. 수술대가 길어서 꽃밥이 암술에서 멀수록 자가수분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인데, 이들은 그런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수술대가 매우 짧거나 아예 없는 수술은 원시적인(또는 원형적인) 형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꽃들은 수술과 암술의 성숙 시기를 달리하는 자웅이숙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자가수분이 일어나는 확률을 낮추기 어렵다. 물론 자가불화합성 기제를 갖추고 있다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이기는 하다.

화살나무속 목본의 공통점 중 하나는 취산꽃차례를 이룬다는 것이다. 취산꽃차례는 맨 위(정단)나 안쪽의 꽃이 먼저 피고 그다음에 그 아래쪽 가지나 곁가지의 꽃들이 피는 꽃차례이며, 유한꽃차례의 대표적인 예다. 유한꽃차례란 피어나는 꽃의 수가 처음부터 정해진 채 피는 꽃차례를 말한다. 즉, 애초에 계획한 수의 꽃만 피우고 추가 생산은 절대 하지 않는 체계다.
같은 취산꽃차례라 하더라도 화살나무속 목본은 나무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를 취한다.
취산꽃차례는 전체적으로 편평하거나 약간 둥근 형태를 이룬다. 취산꽃차례의 대표적인 예인 작살나무나 덜꿩나무만 봐도 그렇다. 화살나무속에서는 사철나무나 줄사철나무가 그런 형태를 보인다. 안정적인 형태인 만큼 다양한 종류의 많은 곤충이 모여들어 자유롭게 활동한다.
▲취산꽃차례의 개화 순서
▲작살나무의 취산꽃차례
▲덜꿩나무의 취산꽃차례

화살나무와 참빗살나무의 취산꽃차례는 옆을 향하는 형태로 변형됐다. 곤충을 어느 정도 끌어모으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특이하게도 회나무 삼총사의 취산꽃차례는 아래로 늘어져 달린다. 마치 풍매화처럼! 바람에 비린내를 잘 날리는 형태로 볼 수도 있겠으나, 흔들리기 쉽고 수분매개자가 거꾸로 매달려야 하는 꽃이 많아 활동하기가 편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드물게 찾아오는 등에나 개미 종류를 빼고는 확실한 수분매개자의 방문을 관찰하기 어렵다. 비린내로 유인은 하면서 앉기 불편한 꽃차례를 만들어놓은 건 왜일까? 정지 비행이 가능해 앉지 않아도 되는 곤충(이를 테면 등에 종류)을 위한 꽃인 걸까? 개미 같은 경우는 몸에 털이 없어 효과적인 꽃가루 전달자로 간주하기 어려운 데다 날개가 없어 가까운 위치의 꽃만 돌아다니므로 자가수분의 일종인 인화수분(隣花受粉, geitonogamy)이 일어나게 할 가능성이 큰 곤충이다. 밤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낮에도 꽃향기를 풍기므로 밤에 활동하는 곤충에게만 의지하는 꽃이라고 추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혹시 회나무 삼총사가 충매와 풍매를 겸하는 전략을 쓰는 건 아닐까? 밤나무처럼! 하지만 미상꽃차례처럼 단성화(수꽃)가 일제히 피어 긴 수술대 끝에서 대량으로 꽃가루를 날리는 방식이 아니다. 수술대가 거의 없고 향기가 나는 양성화를 취산꽃차례에 매달아 각각의 꽃이 시차를 두고 피게 한다는 점은 회나무 삼총사가 충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풍매화보다는 충매화를 더 진화한 꽃으로 본다. 하지만 충매에서 풍매로 전환한 식물도 있다. 국화과의 쑥 종류가 그렇다. 도꼬마리 종류도 국화과 식물이지만 풍매화이며, 골치 아픈 돼지풀이나 단풍잎돼지풀도 국화과의 풍매화다. 식물의 수분 전략이 인간이 예측하는 방향대로 진행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회목나무 삼총사의 꽃이 풍매를 겸하지 않는다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분명한 건, 곤충의 방문을 제한하는 시스템을 갖춘 꽃일수록 특정 곤충과 비밀스러운 수분 계약이 체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회나무 삼총사의 꽃과 꽃차례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인 것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회나무의 꽃차례
▲나래회나무의 꽃차례
▲참회나무의 꽃차례
우리의 달타냥은 또 다르다. 회목나무의 취산꽃차례는 잎 위에 얹힌 형태라 더욱 특이하다. 꽃차례가 약간 늘어지긴 하나 잎 위에 놓이므로 꽃이 대개 위를 향하며 조금 안정적인 착륙장소를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수분매개자의 활동을 어느 정도 관찰할 수 있다. 꽃이 짙은 색이므로 회나무 삼총사보다 유인 대상이 확실한 충매화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방문 곤충이 북적이거나 오래 머무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대체 누가 가서 어떻게 해주는 걸까? 꽃도 분명하고 열매도 분명한데 과정만 불분명하다.
▲잎 위에 얹히는 회목나무의 꽃차례
<참고문헌>
1. 김정환. 2008. 곤충 쉽게 찾기. 진선출판사.

2. 백문기. 2016. 화살표 곤충 도감. 자연과 생태.

3. 이동혁. 2016. 한국의 나무 바로 알기. 도서출판 이비컴.
광릉숲보전센터
현장전문가 이동혁    석사후연구원 김한결    임업연구사 조용찬
copyright(c). KOREA NATIONAL ARBORETU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