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야기
우리 생활 한편의 곡식좀나방
(family Tineidae)
곤충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여 높은 종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 어떤 종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환경에 들어와 인간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데, 꿀벌과 같이 인간에게 꿀을 내어주고 화분 매개의 역할을 하는 등 가축화된 곤충부터 바퀴벌레, 파리, 모기 등과 같이 위생 해충으로 취급되는 곤충들까지 다양한 곤충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 곡식좀나방(family Tineidae)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곤충도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함께 하고 있다.
곡식좀나방과(family Tineidae)는 좀나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기가 작은 미소나방류에 속하는 곤충이다. 매우 다양한 범위의 먹이원에 적응하여 분화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크게 나눠보면 나뭇잎이나 열매와 같은 식물성 먹이를 섭식하는 종류, 썩은 나무나 부엽토와 같은 부생성 물질을 섭식하는 종류, 버섯의 자실체와 같은 균류를 섭식하는 종류, 그리고 새의 깃털이나 절지동물의 탈피각을 섭식하는 종류, 그리고 저장된 식품류를 섭식하는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종류는 저장된 식품류를 섭식하는 종류와 식용 및 약용의 버섯을 섭식하는 종류, 그리고 새의 깃털을 섭식하는 종류이다.
사진 1 곡식좀나방(Nemapogon granella) 성충(왼쪽)과 코르크를 가해한 유충(오른쪽) (figures from Trematerra and Lucchi, 2014)
저장된 식품류를 섭식하는 종류는 대부분 곡식좀나방아과(subfamily Nemapogoninae)에 속하는데, ‘곡식좀나방과‘라는 국명은 Nemapogon granella의 국명인 ‘곡식좀나방‘에서 따온 것이다(사진 1). 곡식좀나방(Nemapogon granella)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곡식좀나방과의 하나로 야생 상태에서는 버섯을 섭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이 사는 환경에 적응 하여 저장된 곡물, 말린 과일, 육포 및 말린 생선 등 건조가 되어있는 유기물은 거의 대부분 섭식할 수 있다. 와인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코르크 마개를 가해하는 경우도 종종 보고가 되고 있다(사진 1). 유럽 원산으로 저장 곡물의 수송을 따라 전 세계에 퍼진 것으로 보이며, 유럽 남부 및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야생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옥, 창고 등의 실내에서 저장식품을 가해하고 그곳에서 세대 거듭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2 Morophagoides ussuriensis. 성충(왼쪽)과 표고버섯을 가해하는 유충(오른쪽)
(figures from https:twitter.com/nekodaisuki1208)
인간과 함께 사는 또 다른 곡식좀나방과는 버섯좀나방아과(subfamily Scardiinae)이다. 야생 상태에서 곡식좀나방아과(subfamily Nemapogoninae)와 비슷하게 산림의 나무에 서식하는 버섯을 섭식하는 종류로 재배 중이거나 수확 후 보관 중인 버섯을 주로 가해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 주로 재배되는 식용버섯인 표고버섯이 Moropagoides속에 의해서 가해되고 있으며,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사진 2). 또한 곡식좀나방(Nemapogon granella)처럼 식료품의 수송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 3 옷좀나방 성충(왼쪽)과 새 둥지에서 발견된 옷좀나방아과 유충(오른쪽)
사진 4 죽은 동물의 뿔을 가해한 옷좀나방아과 (figures from https://en.wikipedia.org/wiki/Ceratophaga_vastell)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인간과 함께 사는 곡식좀나방은 옷좀나방아과(subfamily Tineinae)이다. 옷좀나방아과는 나방류에서는 보기 드물게 동물성 먹이를 섭식하는데, 자연 생태에서는 새 둥지의 깃털, 육식성 동물이 게워낸 털 뭉치, 동물 사체의 털가죽, 절지동물의 탈피각 등 케라틴 또는 키틴질로 이루어진 동물성 단백질을 섭식한다(사진 3).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등 건조한 초원이 넓게 펼쳐진 지대에서는 죽은 동물의 뿔을 섭식하는 종류도 보고되어 있다(사진 4).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해충으로는 Tinea translucens와 Trichophaga tapetzela가 널리 알려져 있다. Tinea translucens는 우리나라에서 옷좀나방이라 이름이 붙여져 있는 종이며, 야생 상태에서는 주로 새의 둥지에서 깃털을 먹이원으로 삼고 있으나 창고 및 가옥에 침입하여 모, 견, 거위 털 등의 동물성 섬유와 이를 이용해서 만든 카펫, 스웨터, 다운제킷같은 제품을 직접적으로 가해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동물 박제의 털가죽 부분을 가해한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Trichophaga tapetzela는 국내에서는 두무늬좀나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유럽과 북미권에서는 Carpet moth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거실에 카펫을 깔고 생활하는 서구권에서는 매우 흔하며, 큰 피해를 주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곡식좀나방류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으로 분류되어왔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서 몇몇 종의 곤충 유충이 플라스틱을 섭식하여 분해하는 특징을 지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양한 먹이를 섭식할 수 있으며 케라틴, 키틴 등의 고분자 물질을 섭식하는 곡식좀나방과 유충들의 폐기물 분해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와 함께 하는 생물들은 인간의 필요와 피해에 따라 익충으로 또는 해충으로 분류가 되지만 이는 인간이 정해놓은 기준일 뿐 생태계의 모든 생물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전문연구원(박사후연구원) 이동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