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4
본격!! 식물 생태와
생물 상호작용
유혹은 색깔로, 안내는 무늬로
- 꽃이 점점 색스러워지는 이유!
 
▲충매식물은 다양한 색과 모양의 꽃을 피운다(털부처꽃에 날아든 띠호박벌)
타가수분을 목적으로 하는 꽃들의 전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 풍매화나 수매화가 아닌 충매화 같은 것은 인간의 시각이 감지할 수 없는 범위의 색깔까지 발현해내며 곤충을 유혹한다. 그런데 우리가 편의상 구분해 쓰는 풍매화, 수매화, 충매화, 조매화 같은 용어는 모두 꽃(flower)의 관점에서 이르는 용어이다. 해외 자료에서는 주로 풍매식물(wind pollinated plant), 수매식물(water pollinated plant), 충매식물(insect polli
nated plant), 조매식물(bird pollinated plant) 등으로 식물(plant)의 관점에서 이르는 용어를 사용한다. 겉씨식물의 생식기관은 꽃이 아니므로 ‘꽃’자나 ‘화(花)’자가 들어간 용어로 지칭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지적을 수긍한다면 은행나무나 소나무 등의 수분 방식을 풍매화라고 할 수 없는 예가 발생하므로, 이런 경우 ‘식물’의 관점에서 이르는 후자의 용어가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식물(plant)을 빼고 아예 풍매(anemophile), 수매(hydrophily), 충매(entomophily), 조매(ornithophily)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충매나 조매로는 규정할 수 없는 도마뱀, 박쥐, 설치류, 달팽이 등에 의한 수분을 모두 합쳐 동물매(zoophily)로 총칭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충매와 조매가 선택한 매개자인 곤충과 새 위주로 시각신호에 의한 상호작용의 이야기를 다루겠다.
▲동물매일까?(푸른가막살 꽃차례에 올라앉은 미끈도마뱀)
1. 색깔의 유혹
시각을 이용해 방문하는 동물을 유혹하기 위해 꽃이 활용하는 것은 색깔이다. 꽃의 향기와 크기와 모양은 모두 화분 매개자들의 관심을 끌지만, 색깔이야말로 곤충의 눈에 잘 띄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식물은 화분 매개자들의 시각적 선호도에 부응하기 위해 무지개와 같은 다양한 색깔의 꽃을 발달시켰다.
그런데 빛의 스펙트럼과 달리 꽃 색상의 스펙트럼에서는 초록색이 빠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화분 매개 곤충들보다 꽃들이 더 일찍 진화했으며, 초기의 꽃들은 주변 잎과 마찬가지로 초록색이었다고 믿는다. 식물과 화분 매개자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고, 화분 매개자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식물은 특정한 매개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맞춤형의 꽃 색상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잎과 비슷한 색의 초록색 꽃은 많이 사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벌은 파란색 꽃에 잘 이끌린다(솔체꽃에 날아든 꿀벌)
▲나비 종류는 붉은색 계통의 꽃에도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석산에 날아든 제비나비)
2. 적색맹의 탄생
벌들은 붉은색 계통의 색을 보는 데 필요한 광수용체를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흔히 적색맹(red-blind)이라고 일컫는다. 적색맹이다 보니 벌들이 대표적인 조매인 동백꽃에는 오지 않는다고들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동백꽃에 찾아오는 벌들의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미처 벌어지지 않은 꽃봉오리도 방문하는 것으로 미루어 꽃가루가 목적이 아니라면 동백꽃의 꿀 향기에 이끌리는 것으로 보인다.
https://blog.naver.com/island615000/221867924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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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벌들은 자외선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췄다. 적색맹인 벌들이 빨간색 양귀비 꽃에 반응하는 것도 양귀비가 반사하는 자외선에 끌리는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나비 종류는 붉은색 계통의 꽃에도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고 X선보다는 긴 전자기파다. 파장이 짧은 보라색의 바깥쪽에 자리하고 있어 자외선(紫外線, ultraviolet)이라고 하며 흔히 UV라고 한다. 일부 곤충이나 새는 자외선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은 볼 수 없다. 각막이 자외선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내장 수술 등으로 수정체를 적출한 사람은 푸른 듯한 흰색으로 자외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후 그림에 푸른색이 많아진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라는 주장이 있다.
▲동의나물의 노란색 꽃잎에는 자외선이 숨어 있어
벌이 감지할 수 있다
▲빨간색 꽃과 열매에 이끌리는 새는 곤충의 경쟁상대다
(동백꽃에 날아든 동박새)
벌 종류뿐 아니라 대부분 곤충은 자외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비 종류도 벌 종류처럼 노란색과 파란색에 민감하고 녹색과 적색에는 둔감하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무늬가 없는 노란색 동의나물의 경우 벌에게는 옅은 색깔의 꽃으로 보이는데, 중심부는 대조적으로 어두운 색깔을 띠어 그곳이 착륙 장소임을 알게 한다. 조류와 어류 중에도 자외선을 볼 수 있는 종이 있고, 포유류 중에서는 고슴도치가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드문 편인 것은 확실하다.
가시광선(可視光線, visible light)은 말 그대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다. 그 범위는 대략 380~780㎚인데, 인간의 눈은 보통 400㎚(보라색)에서 700㎚(빨간색)까지를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80㎚보다 짧은 파장의 것이 자외선, 780㎚보다 긴 파장의 것이 적외선이다. 벌의 눈은 300㎚(자외선)에서 650㎚(주황색)까지의 파장에 민감하다고 한다. 이것을 도표화하면 인간과 벌이 갖춘 시각 영역의 스펙트럼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Fig. 1.), 벌의 경우 자외선 쪽으로 이동이 있었던 것 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인간은 벌과 경쟁 관계인 존재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비교에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인간보다는 새가 벌과 경쟁하는 동물이므로 새와의 비교가 더 의미 있다. 새의 시각은 인간의 시각과 큰 차이가 없다고 알려졌다. 인간처럼 청색과 보라색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지만, 빨간 안경을 쓰고 있는 것처럼 붉은색에 훨씬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보다 넓은 영역의 붉은색을 감지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붉은색 열매와 꽃을 선호하는 새들의 시각 영역과 겹치는 것을 피하려고 벌을 비롯한 곤충들은 자신들의 시각 영역을 자외선 쪽으로 옮기면서 적색맹이 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자외선
영역
가시광선 영역 적외선
영역
10~380㎚ 보라색
380~450㎚
파란색
450~495㎚
초록색
495~570㎚
노란색
570~590㎚
주황색
590~630㎚
빨간색
660~750㎚
780㎚
~1㎜
man violet
400㎚~
blue green yellow orange red
~700㎚
bird violet
400㎚~
blue green yellow orange red
~700㎚
(또는 그 이상)
bee ultraviolet
300㎚~
blue
400~480㎚
green
480~500㎚
yellow
500~650㎚
적색맹
Fig. 1. 인간과 새와 벌의 시각 영역 비교. 이 도표는 벌의 시각 영역이 왼쪽의 자외선 영역으로 치우치면서 오른쪽의 빨간색 시각 영역을 잃어 적색맹이 되었음을 추정케 하며, 그것은 인간보다 새와의 경쟁을 피하려는 전략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3. 꿀보다 색깔
Knoll의 실험에 의하면 곤충은 후각신호보다 시각신호(광학신호)에 끌린다고 한다. 보라색 무스카리의 꽃차례에 유리관을 씌운 그 실험에서 재니등에 종류는 꽃향기가 나는 유리관 바닥 쪽으로 향하지 않고 화살처럼 꽃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고 한다. 향기에 이끌렸다면 당연히 유리관 바닥 쪽으로 향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며, 황색 유리관을 씌우거나 황색 종이로 꽃의 색을 차단하는 순간 재니등에 종류의 방문 시도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물론 무스카리의 꽃향기에 재니등에 종류의 후각기관이 둔감한 건 아니지만, 가까이서가 아니라 멀리서는 시각적 신호에 먼저 반응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곤충은 단거리에서는 냄새에 의한 후각적 단서를 잘 감지하고 먼 거리에서는 색깔에 의한 시각적 단서를 잘 감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포도송이 모양의 파란색 꽃이 피는 무스카리
▲피나물 꽃에 날아든 재니등에 종류
4. 무늬로 하는 안내
색깔로 곤충을 유혹했다면 그다음은 꿀이 있는 지점으로 안내해야 할 차례다. 사실 곤충의 시각 능력은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꽃 가까이 와야 무늬를 구별할 수 있고, 착륙한 뒤에야 선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는 곤충이 먼 거리에서 꽃을 식별할 때 색깔은 중요한 요소지만 꽃의 모양에는 그리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곤충을 꿀 쪽으로 안내할 때도 시각신호를 이용한다. 자외선을 쓰기도 하고 줄이나 점으로 된 무늬를 활용하는 친절함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허니 가이드(honey guide) 또는 넥타 가이드(nectar guide)라고 한다. 일종의 보조 장치로, 넥타 가이드가 있는 꽃과 없는 꽃의 차이는 곤충의 방문 빈도로 나타난다. 어떤 무늬로 할 건지는 꽃을 방문하는 주요 화분 매개자의 기호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호박벌은 선보다 점으로 이루어진 넥타 가이드를 선호한다고 한다. 넥타 가이드 또한 색깔과 관련된 시각신호이며 밝은 바탕에 자주색, 보라색, 파란색 같은 어두운 색감의 무늬로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점의 크기가 점점 커지거나 점의 밀도가 높아지는 방식으로 꿀샘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리며 꽃의 생식기관을 터치하게 만들어 수분(pollination)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식당의 개업과 운영은 사장님 맘대로지만 손님을 무시하면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아는 듯 식물은 화분 매개 곤충의 기호와 요구를 끊임없이 반영하는 색스러운 꽃을 피운다.
▲넥타 가이드는 방문 곤충에게 꿀의 위치를 안내한다
(뻐꾹나리에 날아들어 꿀을 빠는 벌)
 
<참고문헌>

1. B. J. D. Meeuse. 1961. The story of pollination. The ronald press company.
2. Tomy Walker. 2020. Pollination. Quarto Publishing plc.
3. 김정환. 2008. 곤충 쉽게 찾기. 진선출판사.
4. 다나카 하지메, 이규원. 2001.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 꽃과 곤충, 지오북.
5. 박원순, DK 『식물』 편집 위원회. 2020. 식물대백과사전. ㈜사이언스북스. 248-249.
6. 백문기. 2016. 화살표 곤충 도감. 자연과 생태.
7.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island615000/221867924081
8.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thegreenwoodfarm/220986392535
9. 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8B%9C%EA%B4%91%EC%84%A0
10. https://namu.wiki/w/%EC%9E%90%EC%99%B8%EC%84%A0%0D
11.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9197&cid=40942&categoryId=32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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