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6
생태 과학 돋보기
  왜 우리는 아직도 다윈을 읽어야 하는가?
 
1831년 12월 27일, 영국의 해군 측량선 비글호가 큰 몸집을 움직여 남미 대륙으로 향한다. 이 배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22세의 청년이 무보수 박물학자로 승선해 있다. 그것이 인류사에 기념비적인 저서를 남기게 될 일의 서막이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찰스 다윈이 운 좋게 대타로 승선 기회를 잡게 된 것은 식물학 교수인 존 스티븐스 헨즐로 덕분이다. 다윈의 아버지는 다윈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에든버러 대학교에 보내기도 하고, 성공회 신부로 만들 목적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다윈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만난 헨즐로 교수는 다윈이 박물학에 흥미를 갖도록 자극하고, 비글호에 오르게 하는 주선자 역할을 한다.
일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다윈은 처음에 헨즐로 교수의 권유 편지에 거절하는 답장을 쓴다. 아버지의 반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은 다윈을 배에 태우고 만다. 다윈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다윈의 외삼촌 조사이어 웨지우드 2세가 매우 설득력 있는 편지를 써서 다윈의 아버지한테서 동의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런 외삼촌에 대한 다윈의 경애가 딸에게로 향한 걸까? 다윈은 그의 나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외삼촌의 딸 엠마와 결혼한다. 외종사촌 간에서 부부가 된 셈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종의 기원》 해설서
월리스의 편지 한 통
4년 10개월이나 되는 긴 항해에서 돌아온 다윈이 곧바로 집필에 들어간 건 아니다. 진화론이라는 이론을 수립하고 정리해 방대한 분량으로 발전시키며 보완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곤 주위의 몇몇 지인들 정도였다. 그것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상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학문적 신중함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진화론이 야기하는 종교적 차원의 논쟁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의 이론을 숙성시켜가던 다윈을 서두르게 한 건 박물학자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가 보낸 한 통의 편지였다. 1858년 6월 18일에 받아본 그 편지에는 ‘변종이 원종으로부터 끝없이 멀어져가는 경향에 대하여(On the Tendency of Varieties to Depart Indefinitely from the Original Type)’라는 제목의 짤막한 논문이 동봉되어 있었다. 그 논문을 읽어본 다윈은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진화론에서 출발한 리처드 도킨스의 문제작 《이기적 유전자》
그간 자신이 준비하고 있던 논문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다윈은 자신의 20년 동안의 연구 업적이 자칫 2등으로 밀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결국 동료 학자 라이엘과 후커의 주선으로 다윈은 1844년에 자신이 쓴 ‘에세이’에서 발췌한 것, 1857년 자신이 에이서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월리스의 논문을 엮어 〈종이 변종을 형성하는 경향에 관하여:자연선택 방법에 의한 변종과 종의 영속화에 관하여 On the Tendency of Species to Form Varieties:on the Perpetuation of Varieties and Species by Natural Means of Selection〉라는 제목으로 1858년 7월 1일에 런던의 린네 학회에서 공동논문으로 발표한다. 즉, 진화론은 다윈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다윈과 월리스가 공동으로 발표한 학설이 된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월리스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기에 《린네학회회보》에 게재된 자신의 논문을 교정할 기회도 없었다고 한다. 화를 낼 법도 하건만 월리스는 오히려 ‘다윈만의 공로라고 인정해야 할 이러한 발견에 한몫을 끼워 준다니 이는 보기 드문 행운’이라고 했다고 한다. 다윈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월리스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를 보유하지 않은 학자인 게 분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논문의 발표회에는 30여 명의 참석자 중 주목하는 사람이 없어 토론도 없었다고 한다.
종의 기원
다윈은 그로부터 1년 후인 1859년 11월 24일에 상세한 이론을 담은 《종의 기원》을 출판한다. 제목을 흔히들 The Origin of Species로 알고 있지만 원래 제목은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또는 생존경쟁에 있어서 유리한 종족의 존속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이다. 6판부터는 제목에서 On이 빠지면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으로 바뀌었다. 초판 발행 후 13년 동안인 1872년까지 6판을 거듭하면서 많은 부분이 첨삭되는 등 용어나 내용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점점 뒷걸음치는 종의 기원
다윈은 초판을 내면서 스스로 불완전하지만 어쩔 수 없이 출판한다고 머리말에서 실토했다. 자신의 주장에 확신을 한다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히 있을 공격에 대한 방어 전략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종교인 쪽의 창조론자에 의한 공격이 많았다. 그래서 2판부터는 ‘생명체에 처음으로 생명이 깃들고’라는 부분에 ‘창조주에 의해(by the Creator)’라는 문구가 추가되어 ‘생명체에 처음으로 창조주에 의해 생명이 깃들고’라고 바꾸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창세기적 관점의 창조를 사용해서 여론의 비위를 맞추어야 했던 것을 다윈은 오랫동안 후회해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자연선택이 유일한 진화 요인은 아니라고 하는 등 최종쇄인 6판으로 갈수록 자연선택에 대한 강조가 서서히 약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위선택 VS 자연선택
진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한 단서를 다윈은 원예가와 동식물 사육가들의 경험에서 찾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르는 동식물 중에서 원하는 성질을 지닌 것들만을 선택해서 번식시킴으로써 품종을 개량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즉, 인위선택(artificial selection)을 통하여 인간의 필요에 적응하는 품종 쪽으로 종의 진화를 이루어 낸 것이었다. 다윈은 이와 같은 인위선택에 대한 유비로 진화의 메커니즘이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다만, 그러한 자연선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문제였다.
적자생존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
4판까지는 자연선택이라는 말을 주로 썼다가 1869년에 발간된 5판부터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적자생존은 생존경쟁의 원리에 대한 개념을 간단히 함축한 말이다. 이 말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원리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다윈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펜서(H. Spencer)가 1864년 《생물학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라는 저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다윈을 모티브로 한 서적은 어려운 전문용어가 많아 읽기 어렵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을 본 이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윈이 5판부터 자연선택이 아니라 적자생존을 쓴 것은 월리스가 선택(selection)이라는 용어가 인위적인 느낌을 가진다고 생각했고, 다윈도 결국 거기에 동의하면서라고 한다. 그래서 스펜서가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쓴 것에서 착안해 제5판부터 자연선택과 동일한 의미로 적자생존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적자생존은 진화론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문구처럼 일반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와 우생학(優生學: eugenics)까지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히려 진화생물학에서는 적자생존이라는 문구를 쓰지 않게 되었으며 현재 자연선택과는 다른 의미로 보고 있다. 또한 적합하지 않은 자의 생존도 분명히 존재하므로 그걸 설명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진화론의 진화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다양한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것을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심리학이 새로운 기반 위에 세워질 것이며 인류의 기원과 역사에 밝은 빛을 비춰줄 것임을 언급한다. 실제로 진화심리학이 나타나 많은 논쟁이 이어진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이 적용되며 많은 논쟁거리를 낳는다. 진화론의 진화는 끝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출현할 것으로 다윈이 예상한 진화심리학
<참고자료>
1. Charles Darwin, 박성관. 2010.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그린비.
2. Charles Darwin, 송철용. 2009. 종의 기원. 동서문화사.
3. 장대익. 2015. 다윈의 서재. 바다출판사.
4. 장대익. 2020. 다윈의 식탁. 바다출판사.
5. 장대익. 2019. 다윈의 정원. 바다출판사.
6.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4d1696b
7. https://namu.wiki/w/종의%20기원
8.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48378&cid=42560&categoryId=42560
9.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91218&cid=41908&categoryId=4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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