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ZINE VOL.128
생태 과학 돋보기
속씨식물을 알기 위한 겉씨식물 탐험기
 
기후변화 취약 산림식물종 모니터링을 담당할 때였다. 보고회 참석차 모 수목원 담당자 두 분께서 오시던 중 티격태격하는 바람에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소나무의 경우 언제부터 암꽃에서 열매생성시기로 기록해야 맞는가를 놓고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한 분은 암꽃이 곧 열매나 다름없으므로 암꽃 개화시기 기록 후 바로 열매생성시기를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분은 암꽃이 꽃가루를 받아들인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열매생성시기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었으나 솔로몬은 어디에도 없고 고뇌하는 백성들만 서로 딴 데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영월 솔고개의 소나무(우황청심원으로 유명한 솔표의 모델이 된 소나무다)
이 문제의 정답을 찾아가기 위한 지적(知的) 여정은 의외로 멀고 험하다. 일단 용어의 문제점부터 정리한 후 출항의 돛을 펼치자.
소나무를 비롯한 겉씨식물의 생식기관은 화피가 발달하지 않으므로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을 지칭하는 ‘꽃’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다고 한다.
‘꽃’은 물론이고 꽃을 의미하는 ‘화(花)’ 같은 것도 쓸 수 없다고 하니 화가 난다. 그러면 5월의 맑은 날 주차된 자동차 위에 노랗게 뒤덮이는 그것을 ‘꽃가루’라고 해서도 안 되고 ‘송홧(松花)가루’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 아닌가?(사이시옷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정녕 과학인가 싶지만,
그렇다고 엄격한 원칙주의자들의 아카데믹한 지성을 너무 탓하지는 말자. 무식하면 지는 거다.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를 실천하는 심정으로 공부에 도전해 보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발견된다. 사실 겉씨식물이나 속씨식물이라는 용어는 화피의 발달 여부가 아니라 씨방(정확하게는 심피)의 발달 여부에 따라 구분하는 개념이다. 씨가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노출되면 나자식물(裸子植物), 씨방 조직에 감싸여 보호되면 피자식물(被子植物)이다. 화피와는 무관한 특징으로 구분하는 식물의 생식기관을 놓고 어느 한쪽은 꽃이라 부를 수 있고 어느 한쪽은 꽃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김춘수의 무의미(無意味) 시(詩)보다 더 난해하다. 화피의 발달 여부로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차이를 논하려는 것은 화장(化粧) 여부로 남녀를 구분하겠다 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나무가 무고한 자동차에 봄마다 저지르는 일
이 정도 선에서 노를 젓고 나아가기에는 아직 이르다.
겉씨식물에 달리는 것을 열매라고 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겉씨식물은 노출된 밑씨나, 밑씨들의 집합체인 cone에서 수분과 수정이 이루어져서 성숙한다. 속씨식물처럼 씨방이 성숙하면서 씨를 감싸는 방식이 아니므로 열매와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겉씨식물에는 열매를 의미하는 과(果)나 실(實)도 쓰면 안 된다고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홍길동이 따로 없다. 우리가 현재 흔히 쓰는 구과(毬果)나 실편(實片) 같은 용어가 엄밀히 따지면 틀린다는 사실을 들이대면 학자들도 거부감을 표한다. 초보자를 위해 ‘솔방울’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건 소나무에만 어울릴 뿐 모든 겉씨식물 또는 구과식물에 공통으로 쓸 수 있는 용어로 삼긴 어렵다.
겉씨식물의 생식기관을 지칭할 때 ‘꽃’도 못 쓰고 ‘열매’도 못 쓴다는 제약은 이처럼 엄청난 불편을 초래한다. 또한 온갖 억지스럽고 생소한 용어가 학계에 난무하게 한다. 맞다 틀리다는 누구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걸 쓰고 저기에는 저걸 씁시다, 하고 제안했을 때 그게 좋겠네, 하고 만장일치(?)로 찬성하고 공인된 용어는 없다. 어느 용어건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 솔방울을 열매라고 부르면 안 된다
▲속씨식물의 경우더라도 수꽃이나 암꽃은 맞지 않는 용어이다 (으름덩굴의 꽃)
학습 레벨을 올려보면 문제는 더 발견된다. 속씨식물이더라도 암꽃 또는 수꽃으로 표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 그것이다. 핵상이 배수체(2n)인 세포들로 구성된 포자체는 성을 가질 수 없으며, 오직 반수체(n)인 세포들로 구성된 배우자체만이 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암꽃이나 수꽃이 아니라 암술꽃이나 수술꽃 또는 자예화(雌蕊花)나 웅예화(雄蕊花) 정도로 해야 맞는다고 한다. 아,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단 말인가?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사람은 몇 명 있기는 하다. 그런 분들은 암꽃이나 수꽃 대신 자성(雌性)이나 웅성(雄性) 또는 자화(雌花)나 웅화(雄花)라는 용어를 쓴다. 하지만 그 역시 성을 가질 수 없는 기관에 성을 부여해서 지칭하는 용어이므로 틀린 사용이라고 지적당한다.

이쯤에서 목소리를 높여보고자 한다. 어떤 용어이건 100% 그 뜻을 정확히 담아낼 수 없고, 외국어를 번역해야 하는 경우에는 뜻이 1:1로 대응되는 한국어가 찾아질 리 만무하므로 식물 용어의 선택은 최대한 원래의 뜻에 가깝게 하되 사용상의 편의적인 부분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래서 ‘털 달린 공, 가시 달린 과실의 껍데기’를 뜻하는 한자어인 구(毬)를 활용하면 좋다. 화피가 발달하는 속씨식물의 생식기관인 꽃과 다르다는 차별적인 의미로 ‘구화(毬花)’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미 쓰고 있는 용어라 거부감이 적다. 물론, 구화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푸르르다’가 아니라 ‘푸르다’가 기본형인 걸 알면서도 미당 서정주가 ‘푸르른 날’이라고 시적 허용을 활용했듯이 식물 용어에도 학문적 허용(?)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여러 개의 구화가 이삭처럼 달리므로 ‘구화수(毬花穗)’라는 용어도 허용하고, 염색체적 성이 아닌 기능적 역할의 성이라는 의미로 ‘암’과 ‘수’를 붙여 ‘암구화수’와 ‘수구화수’로 쓰는 것까지 허용하면 혼란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비슷한 이치로, 속씨식물에 생기는 열매와는 다른 종자들의 집합체(?)가 달린다는 의미에서 ‘구과(毬果)’를 허용하고, 그런 식물분류군을 총칭하는 용어로 ‘구과식물’까지 허용한다면
보다 편리한 학술적 활동이 보장된다. 이 모두가 이미 통용되는 용어지만, 적절성의 논란이 있으므로 대의(?)를 위해 아름답게 허용하는 명분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나무의 수구화수에서 나오는 가루를 꽃가루나 화분(花粉)으로 부르지 못한다면 이를 대체할 용어를 찾기 어렵다. 억지로 한다면 ‘구화가루’ 정도? 뿐만 아니라 꽃가루입자(=화분립, pollen grain)라든가 꽃가루관(=화분관, pollen tube)처럼 ‘꽃’을 기반으로 파생되는 용어가 겉씨식물에도 많으므로 일일이 바꿔 부를 수 없으므로 학문적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앞서 얘기한 기후변화 모니터링 담당자 두 분의 다툼에서 소나무의 암꽃을 암구화수라 부르고 열매를 구과라고 부를 수 있는 정당성과 학문적 품위를 스리슬쩍 확보했다.
▲이것을 꽃가루가 아니면 무엇이라 부를까?
자, 이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갈 때다.
그렇다면 소나무의 암구화수는 언제부터 구과의 생성시기로 볼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아니지만, 복선을 깔기 위해 정답 비슷한 것을 미리 흘리자면, 소나무의 암구화수는 생겨난 그해에 절대 구과의 생성시기로 볼 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구과로 부르려면 최소한 수정이 일어났다고 봐야 하는데, 소나무의 암구화수 안에서는 1년 이내에 수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분(受粉, pollinaion)과 수정(受精, fertilization)을 수분(水分, moisture)과 수정(水晶, crystal) 정도로 오인할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짚고 넘어가는 친절을 베풀자. 수분( pollinaion)은 단순히 꽃가루가 암술머리로 옮겨지는 일이다. 그에 비해 수정(fertilization)은 정세포의 핵과 난세포의 핵이 융합하는 일이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소나무는 암구화수의 배주인편(흔히 실편이라고 부르는 조직)이 열려 수분이 일어난 후 무려 13~15개월 정도가 지나야 수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분 후 최소한 1년은 지난 후에야 수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니 암구화수가 생겨난 그해에는 암구화수에 큰 변화가 없다.
▲소나무의 암구화수가 벌어진 시기로, 수분 전(5월8일)
▲소나무의 암구화수가 닫힌 시기로, 수분 후(6월15일)
의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나무의 꽃가루가 화분실에서 1년 넘게 기다리는 동안 암구화수는 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 걸까? 마음의 준비? 그런 걸 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다. 답은 ‘천천히 배젖을 형성한다’이다. 배젖은 배유(胚乳)라고도 하며 배(胚)가 뿌리와 잎을 내어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영양공급원이 되어준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특성은 이 지점에서 한 번 더 갈린다. 겉씨식물은 정세포의 핵과 난세포의 핵이 융합하는 단일수정을 한다. 소나무의 경우 단일수정 후 1년 넘게 배젖을 형성해서 준비를 마친 후 그제야 신호를 보내 신랑을 신방으로 입장시키고는 첫날밤을 치르게 한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가던 꽃가루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화분관을 통해 정세포를 주입한다. 그제야 신부의 얼굴을 마주한 소나무의 정세포는 어떤 심정일까?

이제 정답의 보물섬에 다 와 간다.
겉씨식물은 이렇게 수분과 수정에 시간 차이가 있고, 2년에 걸쳐 밑씨가 종자로 성숙하는 종이 많다. 반면에 속씨식물은 중복수정을 통해 수분과 수정의 시간 차이를 획기적으로 줄였기에 수분에서 결실까지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중복수정이란, 정세포의 핵과 난세포의 핵이 융합하는 수정 외에 또 다른 정세포의 핵과 2개의 극핵이 융합해 배젖(3n)을 형성하는 수정까지 동시에 이중으로 치르는 것을 말한다. 속씨식물이 중복수정을 통해 곧바로 배젖을 형성하면서 열매의 성숙 시간을 줄인 것은 매우 진보적인 사건이다. 열매 또는 종자의 성숙 시간이 길다는 것은 번식과 종족 보존에 그만큼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요소이다. 속씨식물은 이를 중복수정으로 극복한 데다 씨방 벽을 두껍게 발달시켜 씨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겉씨식물의 단점을 이중으로 보완했다.
▲분비나무는 암구화수가 1년 안에 구과로 성숙한다
▲잣나무는 암구화수가 2년에 걸쳐 구과로 성숙한다
▲소나무의 암구화수와 구과 생성시기


겉씨식물 중 전나무, 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은 모두 암구화수가 생겨난 그해에 구과가 성숙하는 식물이다. 반면에 소나무, 잣나무, 비자나무, 개비자나무 등은 2년에 걸쳐 구과나 종자가 성숙하는 식물이다. 소나무의 암구화수는 수분 후 13개월이 지난, 즉 다음 해 6~8월 즈음에 수정이 이뤄진다. 그때가 바로 구과 생성시기가 되며 정확한 시기의 측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나무의 암구화수가 생겨난 그해에서 구과의 생성시기를 찾으려 했던 모 수목원의 두 분 모두 틀리셨으니 소나무 아래에서 만나 화해하셨으면 좋겠다.
참고로, 은행나무는 봄에 수분하고 5개월 후에 수정이 이뤄지므로 밑씨가 달리는 그해에 종자로 성숙시킬 수 있다.
▲은행나무의 생식기관인 밑씨(배주), 이것을 흔히
암꽃이라고 잘못 부른다
▲은행나무는 밑씨가 1년 안에 종자(씨)로 성숙한다
겉씨식물의 항해를 마치고 나면 드넓은 속씨식물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괴롭다. 그리고 두렵다. 공부를 속씨식물의 세계로 옮겨 가려면 자신의 뇌(腦)장하드 용량부터 늘려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린단 말인가? 적응방산(適應放散, adaptive radiation)을 비롯한 폭발적인 종 분화 및 다양한 수분매개자와의 공진화는 다양한 색과 모양의 화피, 다양한 구조의 꽃, 그리고 다양한 유형의 꽃차례를 발달시키며 속씨식물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것만 알아도 뇌는 버퍼링이 걸려 버벅거리기 일쑤다.
▲속씨식물이고 충매화인 괴불나무의 수분
▲같은 속씨식물이지만 풍매화인 박달나무의 꽃차례
그러니 여기서는 복선보다 미끼 같은 이야기를 투척하는 것이 낫겠다. 속씨식물이 수분매개자를 유인하기 위해 화피가 발달한 꽃을 피운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속씨식물=현화식물이라는 등식은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곤충을 비롯한 생물(또는 동물) 업체에 수분을 맡기는 건 기본적으로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 자칫 그들 종족이 멸종하면 수분해 줄 매개자가 없어져 자기 종족까지 공멸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치가 DNA 깊숙한 곳에 행동강령처럼 각인된 식물들은 영구적 안전성이 보장되는 비생물적 수분매개자를 선호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람이나 물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존재할 가장 저렴한 이동 수단이다. 그래서 오히려 화피를 퇴화시키며 풍매화로 돌아선 속씨식물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에 기뻐하다 보면 콜럼버스(1451~1506)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넘어서는 순간 항구를 떠날 수 있다. 멀리 미지의 신세계가 손짓한다. 알지 못할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한 번뿐인 인생도 아깝지 않게 걸고 간다.
<참고자료>
1. 이규배. 2012. 식물형태학 제2판 새롭고 알기 쉬운 식물의 구조와 기능. ㈜라이프사이언스.
2. 이규배. 2010. 식물형태학 용어해설. 라이프사이언스.
광릉숲보전센터
전문위원 이동혁   임업연구사 조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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