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고라니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전시원에는 많은 식물이 심어지고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식물이 있는 곳에는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다양한 삶의 모습이 만들어지고 먹이사슬이 형성됩니다. 이들 생물이 서로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견제하며 때때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면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갈 때 생태계는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 중에 고라니의 개체 수 증가가 있는데, 그로 인해 정원사에게 새로운 과제가 생겼습니다.
전시원의 초식성 곤충들
나비 중에는 기주식물 특이성이 있는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시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추흰나비, 호랑나비, 산호랑나비, 사향제비나비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들 나비 애벌레가 식물 종을 위협할 정도로 대량 발생하지도 않고, 특정 시기에만 출현해서 식물을 공격하므로 이 시기가 지나면 식물은 다시 회복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곤충들로 인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고 식물은 온전한 생활사를 완료할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초식성 곤충들은 2차, 3차 소비자인 육식성 동물들을 부르게 됨으로써 전시원은 생물종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기능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전시원의 육식성 동물들
고라니는 사슴과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종으로 뿔이 없는 대신에 송곳니가 길게 발달하는데, 한국과 중국에만 서식하므로 그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귀한 동물입니다. 식물의 잎을 먹기에 적당한 이빨과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위를 가지며,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먹이활동과 그것을 소화하는데 사용합니다. 육식을 하지 않고 식물성 먹이만을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이므로 온순하고 평화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식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누구보다 두려운 존재가 이런 초식동물들일 것입니다.
새끼 고라니의 몸에는 흰점이 줄지어 있는데, 생후 2개월이 지나면 배내털이 빠지면서 무늬가 사라집니다. 어미 고라니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따로 숨겨두고 기르기 때문에 전시원에서 어미 없이 홀로 숨어있는 새끼 고라니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고라니가 먹어치운 전시원의 식물들
고라니는 봄철의 여린 새순을 즐겨 먹는데 배가 고픈 시기임에도 먹지 않는 식물이 있습니다. 쓴맛이 강한 익모초, 방아풀이나 향기가 진한 배초향, 박하 같은 꿀풀과 식물이 고라니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엉겅퀴, 산초나무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했거나, 독성물질을 온몸에 지닌 미치광이풀, 천남성도 온전한 모습으로 성장합니다. 특이한 것은 대식가인 고라니가 양치식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인데, 주의 깊게 관찰해도 먹은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고라니가 먹지 않는 새순들
호랑이, 늑대 같은 천적이 사라지고, 경쟁자인 노루의 감소 등의 이유로 고라니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배에 3~4마리로 다른 사슴류보다 새끼를 많이 낳는데, 기후 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어린 새끼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도 개체 수 증가의 원인이 됩니다.
고라니 접근을 막기 위한 구조물들
고라니는 새순이라면 대부분의 식물을 먹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새로 식재되는 초본의 어린잎을 공격하기 때문에 식물은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많아진 고라니로부터 식재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실패는 관리자를 허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고라니의 흔적들
그런데 이들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에는 배설물이 남겨지는데, 고라니의 분변이 다른 동물의 분변에 비해 탄질비가 낮아서 퇴비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생태계는 서로 돕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참고문헌>
1.Aide, T.M. and E.C. Londono. 1989. The effects of rapid leaf expansion on the growth and survivorship of a lepidopteran herbivore. Oikos 55: 66-70.
2.박효민,이상돈. 2014. 고라니 분변량과 토지 유형의 차이가 식물 생장에 미치는 영향. 한국습지학회. 16(4): 443-452.
3.다카츠키 세이키. 2020. 사슴문제를 생각한다. 국립생태원.
전시교육연구과
연구원 안은주 이수호 임선미 채해용 김보라 임업연구사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