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정원
DMZ자생식물원 속 작은 북한의 숲, 북방계식물전시원을 소개합니다!
저만치 대포소리가 울려 퍼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군용차량과 마주치는 곳, 접경지역 강원도 양구.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해발 1,000m가 넘는 도솔산을 올라간 뒤, 3km의 긴 돌산령터널을 통과하면 해안면 펀치볼에 자리한 DMZ자생식물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DMZ의 훼손된 생태계의 복원기법과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한 북방계 식물을 연구하는 DMZ자생식물원.
‘북방계식물전시원’에서는 오늘도 연구 인력들이 북방계식물, 북한식물들과 씨름하며 독특한 고산지대의 환경을 재현한 작은 숲을 가꾸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북한식물이 담겨있는 ‘북방계식물전시원’을 여러분께 소개하려합니다.
북방계식물전시원은 해발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DMZ자생식물원 내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봄은 한 달 정도 늦게, 여름은 일찍 찾아오는 특유의 기후 특성상 이제서야 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여 여러 선생님들의 손과 발이 분주합니다.
5월 중순, 북방계식물전시원에 나가보니 이미 표찰 관리작업이 한창입니다.
북한식물의 이야기를 담은 표찰을 관람 동선에 설치하여 관람객 분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지요.
평소에는 일반인들에게 북방계식물전시원 관람을 제한하고 있지만
매년 5월 말 ~ 6월 초에 북한식물 등 북방계식물을 알리고자 올해는 5월 17일부터 31일까지 2주간 특별 개방을 하였습니다.
사진 1. 표찰교체작업을 하고 있는 DMZ자생식물원 직원분들
북방계식물, 북한식물이란?
북방계식물전시원은 현재 동아시아(한반도 북부, 중국, 러시아 극동지역, 몽골, 일본 북부 등)를 중심으로
북방계식물 및 북한식물을 수집하고 연구, 전시 및 보전하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북방계식물(Northern lineage plants)’은 식물의 기원과 자생범위를 추적했을 때 ‘위도상 지리적 분포의 남방한계선를 한반도로 두는 식물’로 정의합니다.
우리 한반도는 유라시아, 일본, 태평양 섬들에 사는 생물들의 생명줄로서,
까마득한 지구의 역사 속에서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북방과 남방의 생물이 거쳐가는 다리역할을 하였습니다.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epoch)의 빙하기 때에는 북한 산지의 기후가 전반적으로 매우 한랭했기 때문에
높은 고도에 살던 식물들의 분포역이 낮은 고도로 이동하거나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Kong, 2006).
약 1만 2천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북방계식물들에게 피난처 역할을 했던 DMZ 일대는 한반도에서 북방계 식물의 마지막 한계지점이기도 하며 평지에서는 찾기 힘든 희귀식물이 풍부하게 자생하고 있는데, 이들은 오랜 세월동안 한반도의 국지적인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해왔습니다.
북방계식물 중에는 한반도의 고산대와 아고산대처럼 기온은 낮으면서 낮과 밤, 계절별 기온 차이가 심하고, 비가 자주 내리며, 바람이 세고,
자외선의 양이 많은 특수한 조건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고산식물(Alpine plants)들도 있습니다.
눈잣나무, 눈측백, 시로미, 노란만병초, 월귤 등이 대표적이며 강풍과 강한 햇빛과 강추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키가 작고,
털이나 비늘이 많은 두터운 잎을 갖도록 진화하였습니다.

한편, ‘북한식물’이란, 남한에는 자생하지 않으면서 북한과 인근지역에 분포하는 식물을 말합니다.
북한은 영토의 넓이, 기후대의 위치에 비하여 식물 종 수가 많고, 특산종(Endemic species)과 유존종(Relic species)이 많으며
수평적, 수직적 분포의 경향성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Kong, 2002).
그러나, 현지답사는 고사하고 자료수집조차 어려운 지금의 실정에서 북한의 식물상이나 자연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매우 부족합니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외부 세계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우리는 북한의 기본적인 자연환경조차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과거에 북한에서 출판된 자료나, 북한 식물을 연구한 인접국가의 연구자료를 모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연구는 시작되었습니다.
북방계식물전시원의 봄, 여름
현재 북방계식물전시원에는 200여종의 북방계식물들과 40여종의 북한식물이 식재되어 있고,
해발 500~1,800m의 한반도 북부 고산, 아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분비나무, 시로미, 황산차, 진퍼리꽃나무, 들쭉나무 등의 고산식물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DMZ자생식물원이 위치한 해안면은 연평균기온이 7.6℃이고 평균최저온도는 영하 20℃에 이르러 식물원에 식재되어 있는
대부분의 식물은 이런 고산지역의 추운 환경에 적응된 것들입니다.
종자로 번식되는 식물의 경우 고도가 낮은 해안면 팔랑리나 식물원 온실에서 파종하고, 어느 정도 자라면 식물원 노지에 내다 심습니다.
방문자센터를 통과하여 연구동까지 올라와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백두산떡쑥, 너도개미자리, 흰양귀비가 먼저 방문객들을 맞아줍니다.
북방계식물전시원은 계절마다 이채로운 모습들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북방계식물, 북한식물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봄…….
따뜻한 햇빛이 온 세상을 비추는 봄이 오면 겨우내 소복히 쌓인 눈을 이불삼아 지냈던 씨앗들이 하나둘씩 하품을 하며 깨어납니다.
봄에는 가침박달, 백두산떡쑥, 백산차, 시로미, 너도개미자리, 월귤, 진퍼리꽃나무, 황산차, 흰양귀비 등이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합니다.
북방계식물전시원 입구와 전시원 경사로에서는 DMZ자생식물원의 자부심으로 여겨지는 백두산떡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레드카펫을 드리운 듯, 분홍색물결이 대지를 뒤덮은 모양이 장관입니다.
백두산떡쑥은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백두산 지역의 건조한 풀밭에서 주로 자생하기 때문에 백두산떡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국화과식물로 백색의 꽃이 줄기 끝에 밀생하듯이 머리모양꽃차례로 꽃을 피웁니다.
과거에는 이른 봄에 솜털이 덮인 듯이 자라는 어린 잎을 채취하여 날로 먹거나 떡을 만들어 먹고, 잎은 약용하였습니다.

백두산떡쑥 주변으로는 백산차와 황산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산차는 북한식물이기도 하면서 희귀식물 EN 등급으로서
한반도 북부(백두산, 함경도 고산지대), 중국, 일본 북부, 러시아의 해발 1,000 ~ 1,700m 숲에서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5월에 백색으로 꽃이 피는데 관상가치가 뛰어나며, 일년생 가지와 잎에서 짙은 향내를 뿜어내 예로부터 차로 대용한 식물입니다.
고조선부터 백제, 고구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님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백산차를 끓여서 올렸습니다.
이능화(1869~1943)가 쓴 『조선불교통사』하권에는 ‘조선의 장백산에서 차가 나는데 이름을 백산차라고 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조선의 장백산이란 백두산을 가리키는 말이고 줄여서 ‘백산’이라고 하니 과거 백두산 인근지역에 살던 우리 조상님들이 애용하던 식물임에는 분명합니다.
종소명 palustre는 ‘늪지에서 자라는’이라는 라틴어로 주로 습한 초지에서 자생하는 백산차의 습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황산차도 백산차와 마찬가지로 진달래과 식물이면서 북한식물이며 예로부터 차대용으로 식용하였습니다.
황산차라는 이름은 중국의 황산지역에서 나는 차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한반도 북부(평안북도, 함경남북도), 일본, 만주, 사할린, 동시베리아, 알래스카 등지에 분포합니다.
사진 2. 봄에 피는 북방계식물전시원 내 북방계식물 및 북한식물.
(a) 백두산떡쑥[Antennaria dioica (L.) Gaertn.],
(b) 월귤(Vaccinium vitis-idaea L.),
(c) 시로미[Empetrum nigrum L. subsp. asiaticum (Nakai ex H.Itô) Kuvaev],
(d) 백산차(Ledum palustre L. var. diversipilosum Nakai),
(e) 너도개미자리[Minuartia laricina (L.) Mattf.],
(f) 황산차[Rhododendron lapponicum (L.) Wahlenb. subsp. parvifolium (Adams) T.Yamaz.]
여름…….
달콤한 꽃향기와 발랄한 새소리가 DMZ자생식물원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여름입니다.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신록은 짙어지고, 그 속에서 피는 야생화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벌과 나비들에게 뽐내기 바빠집니다.
여름이 시작되면 가는다리장구채, 오랑캐장구채, 큰금매화, 분홍바늘꽃, 벼룩이울타리, 과남풀, 명천봄맞이, 용머리, 털기린초, 하늘매발톱 등
화려한 꽃을 자랑하는 식물들이 일제히 꽃을 피워냅니다.
늦봄, 초여름에 북방계식물전시원을 거닐다보면 옹기종기 무리지어 있는 오랑캐장구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북한식물이자 북방계식물로 우리나라 중부 이북의 산지, 중국, 시베리아, 유럽 등지의 고산지대 초원에서 자생하는 석죽과 식물입니다.
‘오랑캐’라는 말이 식물에 붙으면 이는 대개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 북부에 분포한다는 뜻이거나 거친 모양새를 일컫습니다.
따라서 오랑캐장구채라는 이름은 이 식물이 북쪽 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갈색 꽃받침통에 털이 많고 꽃잎이 크게 달리는 특징으로 ‘오랑캐’를 쓰고,
장구채를 닮아 ‘장구채’가 결합한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종소명 repens 는 ‘기어가는’ 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포복성 식물은 아니지만 줄기가 밑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여름 끝자락에는 대암산 정상에서 흘러내려온 시원한 물이 고여 있는 연못 또는 습지원 주변를 거닐다 보면 그 곳에서 영롱한 푸른색의 과남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수줍은 듯이 꽃잎을 쉽게 열지 않으니 과남풀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싶다면 햇빛이 아주 밝은 낮에 찾아가야 합니다.
과남풀이라는 이름은 생약명 용담의 옛이름 관음풀(觀音草)에서 유래한 것으로,
꽃이 피었을 때의 모습 또는 다양한 효과가 있는 약성이 불교의 관세음보살을 연상시킨다는 뜻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예로부터 황달, 이질, 습진 등에 효과가 있어 뿌리를 약재로 사용했던 우리에게 이로운 약용식물입니다.
종소명 trifloral 은 ‘꽃이 3개인’이라는 뜻이지만 반드시 꽃이 3개씩 피는 것은 아닙니다.
꽃말은 ‘정의’, ‘긴 추억’, ‘당신의 슬픈 모습이 아름답다.’ 입니다.
사진 3. 여름에 피는 북방계식물전시원 내 북방계식물 및 북한식물.
(a) 오랑캐장구채(Silene repens Patrin),
(b) 큰금매화[Trollius macropetalus (Regel) F.Schmidt],
(c) 분홍바늘꽃(Epilobium angustifolium L.),
(d) 과남풀[Gentiana triflora Pall. var. japonica (Kusn.) H.Hara],
(e) 명천봄맞이(Androsace septentrionalis L.),
(f) 가는다리장구채(Silene jeniseensis Willd.)
DMZ자생식물원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반도의 북방계식물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DMZ일원의 북방계식물과 북한식물의 유전자원을 수집하여 한반도의 생물다양성을 이해하고, 보전을 위한 북한식물 증식 및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편, DMZ자생식물원은 수목원의 기본적인 목적 외에도 미래의 통일 한반도를 위한 씨앗을 품고 지켜 나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언젠가 남북 협력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통일 이후의 산림복구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더 나아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전체의 생태계를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는 꽃으로 하나되는 아름다운 통일 준비를 해나가겠습니다.
Reference

1. Kong, W. S. 2002. Biogeographic feature of North Korean ecosystem. Journal of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11(3): 157-172. (in Korean).
2. Kong, W. S. 2006. Ecology and natural history of North Korean Pinaceae. Journal of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15(5): 232-337. (in Korean).
3. Kong, W. S. and D. Watts, 1993: The Plant Geography of Korea. Kluwer Acadeic Publishers, The Netherlands.
글쓴이
DMZ자생식물원 전시원관리실
전문연구원 최영민
임업연구사 윤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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