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물 깊이 알기
팔손이가 겨울철에 꽃 피어도 되는 이유
팔손이 꽃에 날아온 동박새
천연기념물 제63호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는 자료가 많지 않다.
겨울철에 먼 섬까지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감행한 겨울철 비진도 팔손이 탐사에서는 의외의 손님을 발견하는 행운이 있었다.
“여그서 내리실 거요?”
“예, 내립니다.”
“어이~ 여그 한 분 내리신답니다잉.”
“아~ 드디어 왔네! 저어~기, 저거 보러 왔어요, 저거. 팔손이!”
“…….”

뭐라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선원 아저씨를 뒤로한 채 비진도 내항마을에 육지 손님의 발이 내린다.
‘그렇지! 모르겠지! 팔손이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을 테니!’
와보겠다고 마음먹은 지가 10년은 더 된 것 같은데 이제야 몸을 데리고 온다. 맘과 몸이 함께 움직이기까지 강산이 한 번은 변한 셈이다.
겨울철 섬 탐사라는 것이 늘 이렇다.
검색 만능 시대에도 잘 검색되지 않은 것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63호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가 그렇다.
팔손이가 자라는 가장 북쪽이어서 1962년 12월 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정확히 60년이나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나 남아 있는지 또 꽃은 언제부터 얼마나 피고 지는지 알고 싶건만 검색되는 자료가 극히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 통영시 통영항 여객선터미널까지 달려가서 배로 옮겨 타고 비진도로 들어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출항이 불규칙해지는 겨울철에 팔손이의 개화기에 맞춰서 가야 하므로 때를 놓치기 쉽다.
또한 내항마을과 외항마을로 된 비진도는 다들 외항마을로 드나들기에 팔손이 자생지가 있는 내항마을은 우연히라도 방문하는 이가 적다.
비용도 만만찮게 든다. 다행히도 남은 출장비가 있어 아침 6시 50분 배편을 끊는다. 따라오던 달빛이 사라질 무렵 반대편 섬과 바다로 붉은 뿌려지는 일출을
맨얼굴에 받으며 35분 만에 내항마을 선착장에 내리고 나니 돌아다니는 사람 그림자가 하나뿐이다.
경남 통영시 비진도 내항마을
천연기념물 제63호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
팔손이(Fatsia japonica (Thunb.) Decne. & Planch.)는 팔이 여덟 개라는 뜻이 아니라 손가락이 여덟 개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러면 ‘팔손가락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을 육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팔손이도 어색하지 않아야 하는데 좀 어색하다.
말이 팔손이지 사람의 중지처럼 가운데에 갈래조각이 위치하므로 홀수인 7개나 9갈래로 갈라진 경우가 많다.
팔손이의 잎은 홑잎(단엽)이 갈라진 것이므로 칠엽수나 가시칠엽수처럼 작은잎(소엽)이 여러 개가 모인 겹잎(복엽)과는 완전히 다르다.
통영 비진도 팔손이나무 자생지는 60년 전과 비교해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다.
드물게 검색되는 옛 사진을 보면 자생지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었다.
태풍이나 염분의 피해를 곧잘 겪었을 법하다. 실제로 1959년 태풍 ‘사라’ 때 큰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번호표를 단 140여 그루의 팔손이가 동백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감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상록 활엽수와 몇 그루의 키 큰 소나무 사이에서 자란다.
팔손이의 꽃에는 특이하게도 파리류가 많이 꾄다.
꽃에서 나는 구수한 꿀 향기가 파리류를 유인하는 맞춤형 향기인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자생지에 와서 깨닫는다.
파리류 외에 팔손이의 꽃을 찾아와 활발하게 활동하는 벌류가 너무나도 쉽게 보인다.
중부지방 온실이나 남부지방 노지에 관상용으로 심은 팔손이는 개화기인 11~12월까지 살아서 활동하는 벌류가 많지 않으므로 파리류가 대신 꾀는 것뿐이다.
따뜻한 남부지방 자생지에는 살아서 활동하는 벌류가 제법 있으므로 팔손이의 수많은 꽃을 계속 들락거린다. 그러니 결실률도 높을 수밖에.
비진도 팔손이의
수형
팔손이의 잎은 여러 갈래로
갈라진 홑잎(대개 9갈래)
가시칠엽수의 잎은 여러 개의
작은잎으로 이루어진 겹잎
잠깐이지만 관찰 결과, 팔손이의 꽃을 방문하는 벌류는 뜻밖에도 땅벌(Vespula flaviceps)이다.
경남 통영시 용화사에 심어진 팔손이에서 본 것도 땅벌인데, 자생지인 비진도 팔손이에도 땅벌이 찾아와 화반의 꿀을 탐하는 것이다.
겨울에도 활동하는 벌이라서 그런가 보다.
땅벌은 흔히 ‘땡벌’ 또는 ‘땡삐’라고 불리며 몸길이가 15㎜ 내외로 말벌류 중 가장 작다고 알려졌다.
중국의 2011년 논문에 따르면 팔손이의 꽃에 파리류 2종과 장수말벌의 방문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주요수분매개자가 장수말벌(Vespa mandarinia)이며, 화반의 꿀을 먹는 것으로 관찰되었다고 한다.
팔손이 꽃에 많이 꾀는
파리류
비진도의 팔손이 꽃에 와서
꽃가루받이하는 땅벌
비진도의 팔손이 꽃에 와서
화반의 꿀을 핥는 동박새
비진도 팔손이에 다른 방문자는 없는가보다 싶어 이동하려던 중 뜻밖의 손님을 발견한다.
동박새! 대표적인 조매화인 동백꽃을 수분하는 매개자다.
사진을 확대해 보면 벌처럼 팔손이 꽃의 화반을 혀로 핥는 것이 보인다. 부리 주변에는 팔손이의 꽃밥과 꽃가루가 묻어 있다.
그 상태로 다른 팔손이 꽃에 가서 같은 행동을 한다면 꽃가루받이가 되니 괜한 손님은 아닌 셈이다.
동박새의 경쟁상대인 직박구리도 팔손이의 꽃을 찾는 것이 목견된다.
그렇다면 자생지의 팔손이는 새의 방문까지 의도한 꽃을 피우는 걸까?
정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냥 우연히 일어난 현상일 뿐이다.
새의 눈에 잘 띄려고 했다면 동백나무처럼 꽃의 색을 붉게 만들었을 것이다.
일본의 2018년 논문에 따르면 팔손이 꽃의 꽃밥과 꽃가루에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파란색 형광(blue fluorescence)이 발산된다고 한다.
파란색을 잘 보는 곤충이 그 파란색 형광을 인식해 찾아온다고 한다.
먼 거리에서는 향기와 같은 후각적 신호에 의지하고, 가까운 거리에서는 시각적 신호에 의지하는 곤충의 습성에 맞춰 형광 화합물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한다.
햇빛 아래에서 잘 발산되는 파란색 형광물질 덕에 팔손이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화려한 화피를 발달시키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렇듯 겨울철에 꽃 피는 수고를 하는 대신 팔손이는 몇 종의 곤충류와 조류까지 독점하는 장점을 누린다.
알고 보니 그 전략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수분매개자는 꽃의 특성에 선택압(selective pressures)을 가하고,
그리하여 형광물질을 활용하기 시작한 팔손이와 벌류의 상호작용은 서로의 공진화(co-evolution)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구가 끝날 때까지! 또는 서로가 멸종할 때까지!
※ references

Shinnosuke M, Hiroshi F, Masanori O, Masayuki S, Mari K, Junko T, Katsumi G, Nobuhiro H (2018)
Biocommunication between Plants and Pollinating Insects
through Fluorescence of Pollen and Anthers. Journal of Chemical Ecology

Wang J, Ma Y, Cui D, Wang R, Lu Y, Qin J (2011) An observation on pollinating insects and their flower-visiting behavior on Fatsia japonica.
Chinese Journal of Applied Entomology
글쓴이
광릉숲보전센터
전문위원 이동혁
임업연구사 손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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