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물 깊이 알기
봉화가 아닌 영양의 잊지 못할 그 향기
경북 영양군의 봉화현호색
한국특산식물 봉화현호색은 최초 발견지에서는 이미 도로공사로 인해 사라졌고, 그 주변 지역에서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꽃이 미색으로 피는 점 외에 현호색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고 하나, 독보적인 향기를 지닌 것으로 파악되었다.
제비꽃속(Viola) 식물만큼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현호색속(Corydalis) 식물이다.
두 속 모두 다수의 종이 있고 그 속에 정체성이 불분명한 종도 포함하며 종내 변이가 심해서 종간 경계를 구분 짓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신종이 발표되어도 얼른 인정해 주기보다 의심의 눈길을 먼저 주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내가 하면 신종, 남이 하면 개체변이’ 소리를 듣기 좋은 분류군이다.
특히 현호색속 식물은 종간 유사성이 많고 특정 종만의 특징이 유사종에서도 나타나거나 지역에 따라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도 변종이나 품종은 없고 모두 독립종의 지위를 가졌다는 점이 신기하다.
그중 가장 최근에 알려진 종이 봉화현호색(Corydalis bonghwaensis)으로, 2017년에 신종으로 발표됐다.
이 봉화현호색을 2011년쯤에 최초로 제보했다는 분의 글(아래)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연구한 분의 결론은 보통 현호색과 형질 면에서 큰 차이도 없고, 신종으로 보기에 무리가 있다는 반대의견도 많았으나
현호색속의 식물 중에 이렇게 아이보리나 연노랑 빛을 내는 꽃이 (별로 없는 것이) 특이해서 신종으로 발표했다고 하더군요.]

연구자도 봉화현호색이 현호색과 큰 차이점이 없다고 보았으면서 꽃 색이 특이하다는 이유로 신종으로 발표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유사종과의 차이점을 찾아내 신종으로 기재한 봉화현호색 논문이 억지스러울 수 있다는 의구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봉화현호색 논문의 적요에서
“봉화현호색은 꽃의 색이 연한 노란색에서 흰색으로 변하고, 내화피 정단은 약하게 돌출하며,
잎 열편은 가는 선형이고 2열 종자를 가진 방추형 삭과이다.
이에 반하여 남도현호색은 내화피 정단이 오목하게 함몰하고 잎 열편이 다양하며 2열 종자를 가진 방추형 삭과인 반면에,
흰현호색은 내화피가 오목하게 함몰하고 잎 열편은 타원형이며 1열 종자를 가진 선형 삭과이다.” 라고 하였다.
잎 부분만 요약하면, 봉화현호색은 잎 열편이 가는 선형이고 남도현호색은 잎 열편이 다양한 점이 다른 것으로 언급했다.
그런데 함께 제시한 검색표에서는 봉화현호색 잎의 열편이 선형(leaflets linear)이고
남도현호색과 털현호색을 한데 묶어 잎의 열편이 타원형(leaflets elliptical)이라고 하는(다양하다고 하지 않고) 이상한 짓을 지질렀다.
그러고 분류학적 처리에서는 봉화현호색 잎의 열편을 ‘선형(드물게 난상 피침형)’으로 기재하고, 도해에서는 넓이가 다른 엽형 그림을 4개나 제시했다.
요컨대, 하나의 논문에서 엽형에 관해 적요 내용과 검색표가 일치하지 않고,
분류학적 처리와 도해에서는 잎 열편의 변이를 슬쩍 끼워 넣어 논문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린 셈이 됐다.
또한 앞서 말한 대로 현호색속 식물은 변이가 심하고 종간 경계가 모호해서 특징이 겹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 제시한 20종의 현호색속 식물에 대한 검색표의 내용 모두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지면의 한계상 다 다룰 수는 없고 딱 두 종만 거론하겠다.
남도현호색(C. namdoensis)
흰현호색(C. albipetala)
털현호색(C. hirtipes)
현호색(C. remota)
조선현호색(C. turtschaninovii)
완도현호색(C. wandoensis)
탐라현호색(C. hallaisanensis)
난장이현호색(C. humilis)
현호색속 식물 중 가장 애매한 종은 단연 현호색(C. remota)이다.
이것은 무슨 현호색, 저것은 무슨 현호색, 하고 분류하는 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현호색이라는 종은 정확히 어떤 특징의 분류군으로 규정해야 하는지 모호해진 감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을 모두 현호색으로 몰아버린다면 그것은 분류학적인 태도가 아닐 것이다.
봉화현호색 논문에서 제시한 검색표에 따르면 현호색은
‘조선현호색이나 완도현호색에 비해 외화피의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외화피에 소돌기가 없다(Outer petals smooth-margin. Outer petals without mucro)’고 하고,
‘왜현호색과 비교해서는 외화피가 좁고 가장자리가 마름모 모양(Outer petals narrow and diamond-margin)’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사종들의 변이까지 아우르는 규정이 되기에 현호색만의 분류 형질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일반 동호인들이 많이 실수하는 탐라현호색(C. hallaisanensis)에 관한 검색표도 문제가 있다.
탐라현호색을 난장이현호색과 비교하면서
‘꽃줄기와 꽃자루에 유모, 내화피의 정단이 둥글다(Peduncle and pedicel pubescent. Inner petals rounded apex)’라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탐라현호색에 관해 정확히 알고 내린 규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Oh(1999)의 검색표에 따르면 탐라현호색은 ‘화경에 털이 밀생하고 꽃은 집단 내에서 청색부터 홍자색까지 변이가 심하다. 줄기 기부가 지면 위로 늘어지다가 상향한다.
제주도에 분포’라고 했는데, 이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설명으로 보인다.
다만, 부가한 내용 중에 탐라현호색이 한라산 저지대의 수림하에서 자란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고지대의 수림하에서 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고지대의 제주조릿대 사이에서 줄기가 덩굴처럼 바닥을 기다가 꽃차례 부분만 위로 솟는 것이 진짜 탐라현호색으로,
낮은 지대에서는 제주조릿대를 보기 어렵고 덩굴처럼 기부가 지면 위로 늘어지는 현호색 종류도 볼 수 없다.
만나기 어려운 식물이다 보니 일반 동호인들은 대개 낮은 지대에서 자라는 것 중 꽃줄기와 꽃자루에 털이 있는 개체를 탐라현호색으로 잘못 알고 사진을 찍어 올린다.
여담이지만, 현호색속 식물 관련 자료에서 ‘peduncle’을 ‘꽃자루’로 번역하고 ‘pedicel’을 ‘작은꽃자루’로 번역한 사례가 적잖이 보이는데, 이 역시 잘못이다.
‘pedicel’을 ‘소화경’으로 번역하니까 소화경을 작은꽃자루로 잘못 바꿔 쓴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인터넷 번역기에서 발생한 번역 오류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소화경이라는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면 그냥 꽃자루다.
그러니 ‘peduncle’은 ‘화경’ 또는 ‘꽃줄기’로, ‘pedicel’은 ‘소화경’ 또는 ‘꽃자루’로 쓰면 된다.
작은꽃자루는 어떤 식물에도 적용할 수 없는 엉터리 용어다.
아무튼 한국특산식물 반열에도 오른 봉화현호색의 존재를 더는 등한시할 수 없기에 찾아 나서기로 한다.
블로거들의 기록을 보면 최초 발견 자생지(경북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는 도로공사로 이미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청량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에서도 여기저기 작은 군락들이 분포한다고 한다.
봉화현호색의 최초 발견자의 기록에 따르면 영덕에서 영양으로 넘어가는 길에 계곡을 따라 아랫동네로 와서 자리 잡고 있더라고 한다.
그렇다면 운전 중에도 발견할 수 있는 도로변에서 자랄 것 같고, 한 번에 찾을 수 없다면 두세 번 이상 돌면서 끈질기게 찾아보면 되며,
여기저기 있다고 하니 혹시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새 자생지를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 출발!
유력한 장소를 세 군데로 압축해서 드라이브 스루로 살피면서 간다.
첫 번째 코스 32킬로미터 구간에서는 실패.
두 번째 코스 44킬로미터 구간에서도 실패.
세 번째 코스 24킬로미터 구간에서도 못 찾으면 다음 날 하루를 더 투자해야 할 판이다.
날은 서서히 저물어가는데…….
차 문 열고 살피느라 황사가 입에서 씹히고 목은 점점 컬컬해지는데…….
조급해진 마음은 결국 우연히 연락을 취해온 분들한테마다 협조 요청 답장을 날린다.
혹시 봉화현호색 자생지 아시느냐고, 없어졌다는 최초 발견지 말고!
카톡이라는 메신저는 절대 ‘Car Talk’으로 해서는 안 되겠기에 잠시 갓길에 정차한 후 정중히 손가락을 튕겨서 보낸다.
그러고는 다시 출발하자마자 눈길을 뒤쪽으로 잡아끄는 식물이 있다.
‘뭐지? 연한 산괴불주머니인가? 윽, 저거닷!’ 장장 80㎞ 이상을 운전하며 뒤진 끝에 찾아낸 봉화현호색 자생지는 채 20m도 되지 않는 밭뙈기 구간이다.
카톡이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지나쳤을 법한 그곳은 계곡이 아니므로 최초 발견자가 언급한 곳과 다른 새로운 자생지로 보인다.
이곳에서 먼저 발견됐더라면 영양현호색이 됐으려나?
연한 파란색이 도는 봉화현호색 개체
연한 분홍색이 도는 봉화현호색 개체
엽형이 다른 봉화현호색 개체
설레는 맘으로 다가가서 사진가 폼을 잡는다.
순간, 어디서 좋은 향기가 허락도 없이 콧구멍을 드나든다?
‘무슨 향기지? 에이 설마…….’하면서 일어나면서 보니 그 옆에 자두나무 꽃이 피어 있다.
‘그럼 그렇지! 자두나무 꽃향기였구나!’
주위를 두루 살펴보니 등 푸른 생선처럼 연한 파란색이 도는 개체도 있고 곱게 화장한 새색시처럼 연한 분홍색이 도는 개체도 있다.
물론, 다양한 엽형을 가진 개체들도 보이고. 그런데 아까 그 자두나무 꽃에서 멀어졌고
주변에는 밤송이뿐이어서 죄 없는 무릎과 허벅지가 가시에 콕콕 찔리는데 어디서 좋은 향기가 자꾸 코를 찌른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하면서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듯 밤송이 옆 봉화현호색에 코를 들이댄다.
아, 흠, 아……. 봉화현호색에서 나는 향기가 분명하다!
다른 개체로도 코를 옮겨가면서 벌름거려보니 같은 향기가 계속 감지된다.
제비꽃속 식물처럼 현호색속 식물도 꿀주머니(spur)를 가졌으니 향기가 날 법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토록 진하고 좋은 향기는 20종의 어느 현호색속 식물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다.
수선화나 미선나무의 향기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남자의 고급 향수 같은 향기가 난다.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는데, 그런 사실을 기록해놓은 사람은 아무리 검색해 봐도 없다.
봉화현호색은 꽃 색 외에는 현호색과 별 차이점이 없다고 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흰색 현호색을 봉화현호색으로 오동정한 일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 비슷하다.
그런데 다들 꽃의 향기는 맡지 못했던 걸까?
모르긴 해도 향기만큼은 현호색이나 흰색 현호색을 포함한 모든 유사종에서는 볼 수 없는 봉화현호색만의 특징으로 느껴진다.
물론, 꽃향기라는 것이 너무 주관적이고 정성적 형질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형태적인 차이점 외에 이렇게 향기나 맛으로도 식물을 구별할 수 있다.
잎의 모양이 비슷해서 헷갈리는 개회향(Ligusticum tachiroei)과 고본(Angelica tenuissimum)도 열매의 모양이나
치편의 유무, 열매 단면의 유관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맛만 보면 쉽게 가름할 수 있다.
기름당귀속(Ligusticum) 식물인 개회향은 미나리에서 나는, 흔히 석윳내라고 하는 맛과 향이 난다.
그에 비해 당귀속(Angelica) 식물인 고본은 당귀나 쌍화탕에서 나는, 한약재 맛과 향이 난다.
이 사실을 안다면 꽃이나 열매 없이 잎만 있더라도 두 종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형태적인 특징 외의 다양한 관찰과 기록이 그래서 중요하다.
앞으로 다른 현호색속 식물에도 코를 가져다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아볼 일이다.
글쓴이
광릉숲보전센터
전문위원 이동혁
임업연구사 손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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