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물 바로 알기
광릉솔잎사초와의 작별 인사
솔잎사초와 개바늘사초(강원도 홍천)
사초는 우리와 가깝고도 먼 사이입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그 이름을 알아내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광릉숲에서 쉽게 이름을 확정지을 수 없는 사초를 만났습니다.
광릉솔잎사초의 새로운 등장인지 종의 실체를 찾아보았습니다.
사초과 식물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그 모습을 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위의 사진속 사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꽃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초는 엄연히 피자식물(Angiosperm: flowering plants)에 속합니다.

벼목(Poales L.)에 속하는 사초과(Cyperaceae Juss.)는 벼과 식물의 자매군으로,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식물 중 국화과, 벼과, 장미과 다음으로 많은 분류군을 포함합니다.
사초과에 속하는 사초속(Carex L.)은 피자식물에서 가장 큰 속 중에 하나로 전 세계 약 2,000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220여 분류군의 사초속 식물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사초과 식물은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습지부터 건조한 지대까지 서식합니다.
그만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잡초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초는 연약지반 고정 기능을 하며, 야생동물의 서식처이자 먹이자원이 되고, 몇몇 종들은 토양 정화 능력을 갖추거나 약용, 원예용으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초속 식물의 소수화서 구조 – 『 한국식물 도해도감 4 사초과』, 국립수목원
사초는 잎의 형태가 비슷하므로 정확한 동정을 위해서는 위와 같은 소수화서의 현미경적 관찰이 중요합니다.
골사초(C. aphanolepis)
괭이사초(C. neurocarpa)
솔잎사초(C. biwensis)
사초속 식물의 다양한 형태
사초를 관찰하다 보면 크게 3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사초 형태입니다.
맨 위에는 정생(꼭대기 또는 줄기 끝에 나는 형태)하는 웅소수가 있고, 옆에는 액생(줄기와 잎자루 사이에서 나오는 형태)하는 자소수가 달려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사초’라고 하면 떠오르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두 번째는 괭이사초 형태입니다.
괭이사초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오히려 벼과 식물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괭이사초 종류는 골사초에서 보였던 정생하는 웅소수와 액생하는 자소수가 합쳐진 자그마한 소수들이 조밀하게 모여 사진에 보이는 화서를 구성합니다.

세 번째는 솔잎사초 형태입니다.
이 종류의 사초는 골사초나 괭이사초 형태의 사초들보다는 생소합니다.
이들은 여러 개의 소수화서가 달리는 다른 사초들과 달리 정생하는 단 하나의 소수만을 가집니다.
그리고 우리 광릉숲에도 이 솔잎사초 종류의 사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사초는 표본 학습만으로는 현장에서 동정해내기 힘든 분류군 중 하나입니다.
사초 표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수화서가 눌리고 과낭이 떨어지면서 원래의 모습과 차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표본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광릉숲에서 솔잎사초 형태의 사초를 보았을 때 개바늘사초로 오동정을 했습니다.
나중에 강원도 홍천으로 식물조사를 가서 개바늘사초와 솔잎사초 모두를 관찰하고 나서야 광릉숲에서 발견한 사초가 개바늘사초가 아닌 솔잎사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광릉숲에서 관찰한 사초의 좀 더 정확한 동정을 위해 광릉숲의 사초, 홍천의 솔잎사초와 개바늘사초의 사진을 비교해보았습니다.
광릉숲의 사초(Carex sp.)
홍천의 솔잎사초(C. biwensis)
홍천의 개바늘사초(C. uda)
관찰한 사초의 소수화서 형태 및 크기 비교
겉으로 봤을 때는 세 개체 모두 형태적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왼쪽의 두 분류군은 확실히 오른쪽의 개바늘사초가 아니었습니다.
광릉숲과 홍천의 솔잎사초의 경우 과낭이 달리는 모습과 소수화서의 크기에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광릉숲의 사초는 과낭이 화서축에 주로 비스듬히 달리고 홍천의 솔잎사초는 과낭이 수평으로 화서축에 달려 있습니다.
소수화서의 크기의 경우 광릉숲 사초가 8㎜ 정도이고, 홍천의 솔잎사초는 1㎝ 이상으로 큰 차이가 보입니다.
저는 광릉숲 사초를 동정하기 위해 솔잎사초의 근연종을 검토해 봐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을 보면 솔잎사초의 근연종으로 잔솔잎사초(C. capillacea)와 노끈사초(C. capillacea var. aomorensis)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첫 번째 후보인 노끈사초의 경우, 과낭의 길이가 2.8-3.5㎜로 길다고 하였는데 광릉숲의 사초는 과낭 길이가 2㎜ 정도이기 때문에 노끈사초는 아니었습니다.
- 두 번째 후보인 잔솔잎사초의 경우 국립생물자원관의 고화질 사진을 찾게 되어 광릉숲의 사초와 비교를 해보았는데, 어느 정도 유사해 보였습니다.
광릉숲의 사초
잔솔잎사초 – 사진출처: 국립생물자원관
다음 단계로 『 한국식물 도해도감 4 사초과』 에 나와 있는 검색표를 확인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솔잎사초와 잔솔잎사초를 구분하는 형질은 화서의 길이, 자인편과 과포(과낭)의 상대적인 길이입니다.
솔잎사초, 잔솔잎사초 검색표 – 『 한국식물 도해도감 4 사초과』, 국립수목원
위 검색표에 제시된 잔솔잎사초의 화서 길이는 광릉숲의 사초와 일치했습니다.
인편과 과낭의 상대적 길이의 경우 표본에서 인편이 많이 소실되어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음으로 서식지를 확인했습니다.
위 도감에서는 잔솔잎사초가 제주도 애월읍 고지대 습지에 서식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광릉숲과는 지리적으로 꽤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광릉숲 사초와 홍천 솔잎사초의 소수화서 해부를 진행했습니다.
광릉숲의 사초
홍천의 솔잎사초
사초 표본에서 소수화서 해부
홍천 솔잎사초를 해부해보니 도해도감에 제시된 솔잎사초의 특징과 일치했습니다.
반면 광릉숲 사초는 도감에 기재된 잔솔잎사초 내용과 인편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도감에 제시된 바에 따르면 잔솔잎사초의 웅인편이 자인편보다 길어야 하는데 광릉숲 사초는 자인편이 웅인편보다 길었습니다.
남은 인편으로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한 것인데, 만약 이 개체의 모든 자인편이 웅인편보다 길다면 유의미한 구분 형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광릉솔잎사초’라고 이름 지을 만한 새로운 종의 등장인지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국립수목원 표본관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표본관에서 솔잎사초 폴더를 열어보니 저와 같은 곳에서 채집한 표본이 있었습니다.
표본의 전체적인 모습, 인편과 과낭을 현미경으로 관찰했습니다.
자인편은 웅인편보다 짧았고 전체적인 화서의 길이도 솔잎사초의 기재와 일치했습니다.
제가 관찰한 개체는 솔잎사초에 속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미경을 이용해 사초 소수화서를 해부하는 모습
사초를 동정하는 일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소수화서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어 조그마한 화서를 해부하며 의심하고 추정해야 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초는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하고, 알고자 한다면 동정자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광릉솔잎사초’라는 저만의 신종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고했지만, 어디에선가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을 사초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표본열람을 허락해 주신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선생님들, 사초 자문에 도움을 주신 조양훈 선생님,
그리고 현미경 사진을 제공해 준 저의 식물 짝꿍 성신여대 문현지 선배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글쓴이
광릉숲보전센터
청년인턴 정민경
임업연구사 손성원
(우)11186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509 대표전화 031-54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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