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물 바로 알기
속(屬)도 모르는 팥꽃나무 제대로 알기
팥꽃나무(전남 완도군)
팥꽃나무는 자기가 대표로 속해 있던 팥꽃나무속(屬)에서 빠져나와 산닥나무속으로 바뀌었다.
알고 보면 국명의 유래가 불분명하고, 열매 색에 관해서도 잘못 알려졌다.
낮은 결실률의 원인은 무엇이며, 자가수분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자.
잘못 알고 있으면 모르느니만 못한 것이 식물 지식이다. 팥꽃나무(Wikstroemia genkwa (Siebold & Zucc.) Domke)에 관한 것도 그러하다.
오류의 전파자가 되지 않으려면 공부가 필요한데, 참고 자료가 신통치 않으면 공부도 안 하느니만 못하다.
우선, 팥꽃나무라는 식물명의 유래부터 짚고 넘어가자.
찾아보면 ‘꽃이 피어날 때의 빛깔이 팥알 색깔과 비슷하여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박상진, 2018)’라든가,
‘꽃의 형태가 팥꽃처럼 생긴 데서 유래된 것이다(허북구·박석근, 2008)’라는 식의 이야기가 맞는 것인 양 통용된다.
그런데 정말 맞을까? 팥알은 적두(赤豆)라고 해서 진한 붉은색이고, 팥꽃나무의 꽃은 분홍에 가까운 보랏빛(홍자색)이므로 비슷한 것으로 쳐주기엔 너무 다르다.
또 팥의 꽃은 한쪽으로 둥글게 말린 좌우 비대칭형이므로 바람개비 모양의 좌우 대칭형인 팥꽃나무의 꽃과 비슷하다고 할 수조차 없다.
사실 이 유래담들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쓴 것이기에 단순한 사견에 불과하다.
출전이나 출처를 알 수 없으니, 글쓴이가 상상력으로 지어냈거나 떠도는 이야기를 옮겨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팥꽃나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건 팥꽃나무의 다른 이름, 즉 이명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 식물명의 유래』에서는 ‘팟꽃나무, 넓은이팝나무, 니팝나무, 이팝나무, 넓은잎이팝나무, 넓은잎팟꽃나무, 넓은잎팥꽃나무, 이팥나무, 조기꽃나무’를 제시했다.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에서는 ‘니팝나무/팟꽃나무(정태현, 1943), 이팝나무/넓은이팝나무(박만규, 1949),
넓은잎이팝나무(정태현, 1957), 넓은잎팟꽃나무(이창복, 1966), 서향(임록재 외, 1972),
넓은잎팥꽃나무(이창복, 1890), 이팥나무/조기꽃나무(이영노, 1996)’를 제시했다. 이런 이명들이 암시하는 건 뜻밖에도 이팝나무와의 연관성이다.
팥꽃나무를 이팝나무와 혼동해 부르다가 이팝나무보다 꽃이 화려하고 예뻐서 또는 진짜 이팝나무와의 구분을 위해
‘꽃’ 자를 넣어 ‘이팝꽃나무, 이팟꽃나무, 이팥꽃나무’ 정도로 불렀을 것 같고,
지시대명사처럼 들리는 ‘이’의 존재성이 불분명해지면서 떨어져 나갔거나 ‘o’의 음가가 사라지면서 생략되어
‘팝꽃나무, 팟꽃나무, 팥꽃나무’로 불리다가 그중 팥꽃나무가 「조선식물향명집(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 1937)」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해 본다.
팥꽃나무를 이팝나무에 견준 이유는 꽃 모양 때문이지 않나 싶다.
화관의 끝이 4갈래로 갈라진 이팝나무의 꽃에서 라일락이 연상된다면 팥꽃나무의 꽃으로도 어렵지 않게 이어질 것이다.
이 또한 추정이므로 맞는다고 우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분명한 것은 팥꽃나무라는 이름이 팥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사실이다.
팥의 꽃
이팝나무의 꽃
팥꽃나무의 꽃
학명이 수정된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다. 한때 팥꽃나무의 속명이었던 Daphne는 월계수를 뜻하며 월계수와 비슷한 잎을 가진 식물군을 나타낸다.
그런데 「한국산 팥꽃나무과의 계통분류학적 연구」에서 팥꽃나무는 잎이 대생하고 잎에 털이 밀생하며 자방이 도피침형인 점에서
한국산 팥꽃나무속의 다른 종들과 뚜렷이 구분되는데, 이는 산닥나무속(Wikstroemia)에 가까운 특징이며,
핵 리보오솜 ITS 구간 및 엽록체 rbcLmatK 구간의 염기서열을 이용한 계통분석 결과
팥꽃나무속이 단계통군이 아니며 팥꽃나무가 산닥나무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Lee and Oh, 2017).
또한 「한국산 팥꽃나무과의 화분형태학적 연구」에서 팥꽃나무는 팥꽃나무속의 다른 종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며(Jung and Hong, 2003a),
「한국산 팥꽃나무과 잎표피 미세구조의 분류학적 검토」에서 팥꽃나무는 한국산 산닥나무속의 두 종과 유사한 형태라고 밝혔다(Jung and Hong, 2003b).
「Phylogenetic position of Daphne genkwa (Thymelaeaceae) inferred from complete chloroplast data」에서도
팥꽃나무는 Daphne의 다른 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 않고 Wikstroemia의 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계통발생학적 위치를 추론하였다(PARK et al., 2021).
그리하여 팥꽃나무는 팥꽃나무속에서 산닥나무속으로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게 되었다.
팥꽃나무가 빠진 팥꽃나무속은 있을 수 없으므로 최근에는 Daphne를 백서향속으로 바꿔 부르는 추세이다.
참고로, Wikstroemia라는 속명은 스웨덴의 식물학자이자 팥꽃나무과(Thymelaeaceae)에 관한 여러 논문의 저자인
Johan Emanuel Wikström(1789~1856)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종소명 genkwa는 중국명 원화(芫花)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에서 유래한다.
또 다른 중국명으로 원어독(芫魚毒)이 있다.
이는 어부가 팥꽃나무를 삶아 물에 던지니 물고기가 떠올라 죽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팥꽃나무가 가진 독성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다.
열매에 관한 오해도 풀어야 할 숙제다. 옛 도감은 팥꽃나무의 열매가 흰색으로 익는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근자에 나온 도감일수록 흰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가 붉은색으로 익는다고 기술한다.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승자는 옛 도감이다.
팥꽃나무의 열매가 붉게 익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와 함께 팥꽃나무의 자생지로 알려진 중국의 Flora of China에서는 팥꽃나무의 열매를 ‘Drupe white to reddish, black when dry’로 설명한다.
이 자료를 인용하면서부터 팥꽃나무의 열매가 붉은색으로 익는다는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한때 같은 속이었던 백서향(D. kiusiana Miq.), 제주백서향(D. jejudoensis M.Kim), 두메닥나무(D. pseudomezereum var. koreana (Nakai) Hamaya)의 열매가
모두 붉게 익다 보니 팥꽃나무 열매도 그럴 것이라는 추정하에 작성된 자료로 보인다. 하지만 명백한 오류다.
팥꽃나무의 열매는 녹색에서 반투명한 흰색으로 익는다. 흔히 오백색(汚白色, dirty white)이라고 표현하는 천문동 열매와 비슷하다.
열매가 붉은색이 아니라는 점도 팥꽃나무가 백서향속에서 멀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백서향
제주백서향
두메닥나무
붉게 익는 백서향속 식물의 열매
팥꽃나무의 덜 익은 녹색 열매
팥꽃나무의 반투명한 흰색 열매
(사진 제공 : 서화정 박사님)
천문동의 반투명한 오백색 열매
성숙한 열매를 보기 어렵다 보니 팥꽃나무의 열매 색에 관한 오류는 계속 전파된다.
팥꽃나무의 성숙한 열매 사진을 공개적으로 올려놓은 자료가 많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국내 자료에서는 2006년 산림청에서 발간한 「자생식물의 식재관리 표준화 매뉴얼」의 152페이지에서 팥꽃나무의 흰색 열매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해외 자료에서는 http://www.seidelbast.net/genkwa.html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North American Rock Garden Society의
1938년 자료(https://www.nargs.org/sites/default/files/free-rgq-downloads/Saxiflora_6.pdf)가 팥꽃나무의 여러 특징을 잘 기록했다.
이 자료에서는 팥꽃나무 열매의 색을 ‘pearly white’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덧붙였다.
‘최근 몇몇 식물 연구에서 D. genkwaWikstroemia로 분류했는데
이는 아마도 잎겨드랑이에 피는 꽃, 마주나기하는 잎, 건조 시에도 여전히 꽃받침통에 싸이는 흰색 열매 때문일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산닥나무속 식물의 열매는 성숙할 때까지 모두 꽃받침통에 싸인다.
백서향속과 산닥나무속에서 나타나는 열매의 색과 형태의 차이는 종자산포 방식의 차이를 의미한다.
팥꽃나무
산닥나무
거문도닥나무
꽃받침통에 싸인 산닥나무속 식물의 열매
팥꽃나무의 열매를 보기 어려운 이유도 추정해 봄 직하다.
팥꽃나무의 꽃은 암술과 수술의 길이가 다른 이화주성 양성화이며 그중에서도 암술이 수술보다 짧은 단주화 형태만 있다.
즉, 암술이 수술보다 긴 장주화 형태의 꽃은 없다.
이는 같은 산닥나무속의 산닥나무(W. trichotoma (Thunb.) Makino)나 거문도닥나무(W. ganpi (Siebold & Zucc.) Maxim.)에서도 그렇고
백서향속의 백서향, 제주백서향, 두메닥나무에서도 그렇다.
단주화 형태의 꽃은 암술이 수술보다 낮은 쪽에 있으므로 자가수분이 일어나기 쉽다.
양성화 중에서 자가수분하지 않으려는 식물은 대개 수술보다 암술의 위치가 높은 장주화 형태의 꽃을 피우는데, 이들은 그 반대의 자세를 취한 셈이다.
국내의 산닥나무속과 백서향속 식물은 모두 자가수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완벽한 자가불화합성을 갖추고 있어서 교차수분에 의한 결실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유전자다양성이 낮아져 생존에 불리할 텐데도 자가수분 방식으로 전향하는 식물이 있는 건 왜일까?
팥꽃나무
백서향
제주백서향
단주화 형태의 꽃
일단, 비용 문제 때문일 수 있다. 타가수분하려면 꽃가루를 비롯해 수분매개자에게 제공할 화밀 마련과 유인용 화피 제작에 많은 생산비용이 든다.
자가수분한다면 그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팥꽃나무의 꽃에서는 향기가 거의 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자가수분의 오랜 진행으로 화밀이나 향기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자가수분증후군(selfing syndrome)으로 진행된다면 화분, 화밀, 향기 외에 꽃의 형태적 변화도 수반한다.
거제도의 백서향은 자가수분증후군의 결과 제주백서향보다 꽃받침통의 길이가 짧아졌다.
그 외에 제한된 수분매개자, 교배 상대의 감소 때문에 자가수분으로 전향하기도 한다.
이른 시기에 개화하는 백서향의 경우는 제한된 수분매개자를 놓고 수많은 내한성 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고,
교배 대상의 부족까지 겹치는 조건에 놓여 번식 보장을 제공하고 종자 생산을 촉진하는 자가수분을 선호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가수분은 결실률이 높은 경우가 많아 유효 개체군의 감소를 진화적으로 안정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백서향과 달리 제주백서향은 결실률이 낮아 보이므로 언젠가 자가수분으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할지 모른다.
두 종과 비교해 개화기가 한 달 이상 늦는 팥꽃나무는 결실률이 더 낮으니, 자가수분으로의 전환이 시급해 보인다.
어쩌면 이미들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화는 진보(progress)만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기에 전환으로도 나타난다.
백서향의 예에서 보듯 교차수분에서 자가수분으로의 전향은 현화식물에서 곧잘 일어나는 진화적 전환(evolutionary transitions)이다.
자가수분으로의 전환은 되돌릴 수 없으며 멸종률이 높아지는 방식이라고들 하지만 적지 않은 종들이 그런 전환을 하기에 여전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가수분은 곧 자가수정으로 이어진다.
현화식물의 10~15%가 한다는 자가수정(self-fetilization)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진화적 막다른 골목(evolutionary dead end)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한다.
백서향과 제주백서향의 예에서 보듯 자가수정으로의 전환이 그 자체로 종 분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선명했으면 좋으련만 과학적 지식이 죄다 ‘그럴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는 추측성 말뿐이다.
불확실한 것투성이라 불만족스럽지만, 언젠가 확실하게 할 것투성이라고 생각하면 지구에서 뇌 달고 사는 것이 행복하다.
참고자료

1. Han E, Lee J, Tamaki I, Oh S, Cho W, Jin D, KIm B, Yang S, Son D, Choi H, Gantsetseg A, Isagi Y. 2023. Genetic and demographic signatures accompanying the evolution of the selfing syndrome in Daphne kiusiana, an evergreen shrub. Annals of Botany 131: 751–767
2. https://en.wikipedia.org/wiki/Selfing_syndrome
3. https://nph.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nph.16075
4. https://pubmed.ncbi.nlm.nih.gov/23595268/
글쓴이
광릉숲보전센터
전문위원 이동혁
임업연구사 손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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