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생물종
석조문화재와 지의류 <승정원일기에서 지의류 찾기>
석조문화재, 유전자원 보호구역 등 보전·보호와 관련한 지의류 이야기로 오래된 석물들에서 발견되는 지의류.
그 지의류에 대한 오래되거나 새로운 소소한 기록들

우리 지구에는 많은 지의류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그것이 지의류인지 모르고 지나치더라도 지의류들은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시간과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의류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석탑, 석불, 왕릉의 석물들일 것입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보존처리를 많이 하여 지의류를 잘 볼 수 없지만 지방문화재들에서는 수염처럼도 보이고 먼지처럼도 보이고
페인트처럼도 보이는 지의류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의류와 많이 혼동하는 이끼는 선태류로 불리우며 식물계에 속하지만, 지의류는 이끼와 유사하게 보이나 균류와 조류로 구성된 복합생명체입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과거에 어떻게 지의류를 바라보고 언급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과거 문헌들 중에서 승정원일기의 기록에서 지의류를 살펴보겠습니다.
승정원일기에는 조선시대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언급되어 있으며 그 시대의 자그마한 사건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의류’라는 용어는 1900년 이후에 들어온 용어로 과거 문헌 번역은 ‘이끼’로 언급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이끼’로 검색을 하면 영조시기에 꽤나 많은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조(사도세자 아버지, 정조 할아버지)는 즉위 초부터 역대 왕들의 능을 돌아보며 능이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자주 살피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끼’로 언급된 것이 식물계에 속하는 이끼인지, 지의류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색을 표현하거나 세척이나 부착된 부위를 언급한 것으로 보면
선태류 ‘이끼’가 아닌 지의류 ‘이끼’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1) 이끼무늬와 세척

영조는 영조 2년 병오(1726) 10월 20일에 아버지 숙종의 능으로 능행을 나갑니다.
능행 중 다음과 같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상(영조)이 혼유석(魂遊石)의 이끼 무늬가 생긴 곳을 가리키면서 이르기를,
“세척을 하더라도 이렇게 되는가?”하니,
능사 참봉(陵司參奉) 정윤헌(鄭胤獻)이 아뢰기를, “해가 오래된 까닭에 자연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비록 세척을 하여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숙종이 죽고 7~8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 세척을 해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지의류가 석물에 완전히 고착되어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탈락이 잘 되는 선태류 ‘이끼’보다는 지의류(가상지의류)가 당시 혼유석(봉분 바로 앞 석상)에 존재하여 언급된 것으로 보이며
세척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의류는 부착되는 형태나 모양에 따라 세가지 정도로 구분되는데
그중에 가상(고착)지의류의 경우 석물을 파고들어 밀착되어 있어서 제거가 어렵습니다(그림1).

그림1. 지의류의 형태(가; 가상지의류, 나; 엽상지의류, 다; 수지상지의류)

2) 검은곳과 세척

영조 3년 정미(1727) 2월 2일에 형인 경종의 능행 중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오고 갑니다.
「상이 이르기를, “병풍석(屛風石)의 색이 검은 곳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김낙조가 아뢰기를,
“부지런히 세척을 하지만 이끼가 낀 곳은 세척을 하더라도 끝내 본래의 색과 같지 않습니다.” 하였다.」


‘검은 곳’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염풍화로 인한 색 변색 부분이거나 가상지의류로 생각되며 능의 석물들의 지의류를 제거하고자 하였으나
제거가 어려운 눈물겨운 고충을 토로하는 능 관리자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후의 영조는 능을 1년에 한 번씩은 갔었고 갈 때마다 석물들을 잘 관리하라는 말을 합니다.

3) 이끼 낀 석인이 송화 빛을 띠는 듯

눈여겨 볼 점이 하나 있는데, 영조 10년 이전의 기록에서는 지의류를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으나
영조 10년의 기록에서는 선태류 ‘이끼’인지, 지의류 ‘이끼’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송화’라고 표현합니다.
「상이 이르기를, “난간석(欄干石)을 만들지 않고 사대석(莎臺石)만 설치하였으니, 추숭(追崇)하여 능(陵)으로 봉하였기 때문 인 듯하다.
고개를 넘은 뒤에 보니 동구(洞口)가 매우 열려 있고 이끼 낀 석인(石人)이 마치 송화(松花) 빛을 띠는 듯했다.”」


송화빛은 아이보리 보다는 조금 진한 색으로 판단되는데 석조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촛농지의속(Candelaria), 닯은촛농지의속(Candelariella)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그림 2).

그림 2. 석조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의류(1) (가; Candelaria asiatica, 나; Candelariella subsquamulosa)

4) 돌이끼와 낫

고종 재위 37년 6월 3일(1900년)에 지의류로 판단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수호군(守護軍)의 자식 문산이(文山伊)가 지금 12살인데 어린아이들과 함께 먼저 능 위에 나아가 제초할 때에
석마의 오른쪽 귀 위의 돌이끼를 낫으로 벗기고 문지르다가 귀가 결락된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제초하는 중 돌이끼를 제거 해보려다 석물을 손상시킨 경위를 보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린아이의 눈에도 돌이끼가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특히 돌이끼로 칭하고, 석물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벗기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아 석물과 거의 한 몸으로 붙어 있는 가상지의류가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특히 오목지의속(Aspicilia), 녹색지의속(Endocarpon), 닭살지의속(Pertusaria)나 끝선명접시지의속(Porpidia)중 한 종으로 판단됩니다(그림 3).

석조문화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의류(2)
(가; Aspicilia cinerea, 나; Endocarpon neopallidulum, 다; Pertusaria subobductans, 라; Porpidia albocaerulescens)
오목지의속(Aspicilia)은 다년간 수행한 ‘석조물의 지의류 다양성 연구’ 결과에서 도출된 우점속으로 석물의 모든 부위에서 발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옛 문헌 자료들을 살펴보면 과거와 현재가 생각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 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과 생각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록 ‘지의류’라는 단어는 과거의 문헌에서 찾을 수 없었지만 과거에도 ‘이끼’, ‘돌이끼’ 등의 단어로 ‘지의류’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의류는 알쏭달쏭 생물이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지의류를 계속 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DMZ산림생물자원보전과
전문연구원 박정신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임업연구사 오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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