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식물 깊이 알기
‘김노’의 진화적 시대착오를 이해하기 위한 변론
비개방 지역인 외국수목원에 심긴 외래 수종 김노클라두스 디오이쿠스!
이 나무의 꽃의 성 체제는 해외의 자료마다 약간씩 다르게 설명한다.
종자 산포자를 잃어 진화적 시대착오의 예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 나무의 여러 습성들은 과연 이해하기 어려운 걸까?
비개방 지역인 외국수목원에서 외래 수종의 낙엽발생지연 현상을 조사하던 작년 겨울이었다.
깡마른 몸으로 서서 큰 꼬투리를 단 나무가 멀리 눈에 띄었다.
조각자나무인가 싶어서 다가가 이름표를 확인하니 김노클라두스 디오이쿠스(Gymnocladus dioicus K.Koch)! 학명 그대로 이름 지어버린 나무였다.
수상했다. 이름이 아니라, 남의 나라 수목원에 저 혼자 심겨 있으면서 버젓이 열매 맺은 모습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올려진 이름이긴 하나 다 불러주기엔 너무 긴 풀네임이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김노’까지만 쳐서 검색해도 이름이 뜨므로 내 나무는 아니지만 ‘김노’라고 줄여 부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김노’는 북미 원산의 나무다.
미국 원주민들과 유럽에서 온 켄터키주의 초기 정착민들이 커피 대용으로 마셨기에 일명 ‘켄터키 커피나무(Kentucky coffeetree)’로 불린다고 한다.
로스팅하지 않았거나 부분적으로 구운 콩과 꼬투리에는 독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알칼로이드인 시티신(cytisine)이 있다고들 하나 그것이 실제로 검출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김노’의 정체성은 학명에 많이 담겼다.
김노클라두스(Gymnocladus)라는 속명은 ‘벌거벗은’을 뜻하는 gumnos와 가지를 뜻하는 kladdos를 합쳐서 ‘벌거벗은 가지’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의 잎이 봄에 늦게 나오고 가을에 일찍 떨어지므로, 6개월 이상 맨몸으로 서 있는 모습이 죽은 나무처럼 보이기 때문이란다.
디오이쿠스(dioicus)라는 종소명은 dioecious, 즉 암수딴그루(자웅이주)라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김노’ 꽃의 성 체제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설명한다.
외국수목원의 ‘김노’는 혼자서 결실하므로 만약 암꽃이 피는 암그루라면 무수정생식(apomixis)하는 것이고,
양성화가 피는 양성화그루라면 자가수분(self-pollination)하는 것이 된다.
과연 어떤 꽃이 피는 걸까? 다음 해를 기약해야 할 필요가 그래서 생겼다.
작년 겨울에 만난 김노클라두스 디오이쿠스
고맙게도 시간은 잽싸게 흘러갔다.
기약했던 내년을 금세 올해로 바꿔주더니 주엽나무가 꽃 피는 5월 말까지 순식간에 데려다주었다.
‘김노’의 꽃은 6월에 핀다고 하므로 며칠 더 기다렸다가 6월 초에 외국수목원으로 들어갔다.
5개월 반 만에 재회한 ‘김노’는 작년 겨울에 보았던 열매를 그때까지 달고 있었다.
벌어진 틈으로 종자가 보였다. 곧이어 확인한 꽃은 조금 특이했다.
콩과 식물의 꽃이라기보다 장구채 종류처럼 생긴 꽃을 총상꽃차례에 줄줄이 달아놓았다.
아쉽게도 벌써 새 열매를 맺어가는 중이었고, 꽃은 대부분 시든 상태였다.
게다가 너무 높은 가지에 달려서 500㎜ 망원렌즈로도 꽃의 성별을 정확히 담아내기가 어려웠다.
아쉽지만 ‘김노’ 꽃의 성 체제를 요령껏 추정해 보는 수밖에.
올여름에 다시 만난 김노클라두스 디오이쿠스
앞서 말한 대로 해외 자료에서는 ‘김노’ 꽃의 성 체제에 관해 조금씩 다르게 설명한다.
우선, 암수딴그루지만 일부 꽃차례에는 불완전화(imperfect flower, 즉 단성화)와 완전화(perfect flower, 즉 양성화)가 혼합된다는 자료가 있다.
단성화와 양성화가 함께 피는 것이라면 잡성화(또는 잡성주)를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비교적 드물고, 알고 보면 암수한그루인 경우가 많아서 가능성이 작다.
다른 자료에서는 ‘김노’가 암수딴그루지만 양성화가 피는 나무도 있다고 한다.
암수딴그루 외에 양성화그루도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양성화그루가 있다는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단성화와 함께 양성화가 섞여 피는 나무가 있다는, 즉 앞선 자료와 같이 잡성화(또는 잡성주)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이런 자료들의 문제점은 ‘김노’의 양성화 존재를 언급하면서도 암꽃과 수꽃 사진 외에 확실한 양성화 사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김노’의 양성화 존재설(?)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같은 콩과 식물인 주엽나무나 조각자나무의 성 체제도 알려진 것과 달라 보인다.
중국 원산으로 국내에서는 매우 드문 조각자나무는 암수한그루이고 드물게 암수딴그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제115호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만 하더라도 수꽃은 보이지 않고 결실하는 꽃(양성화 또는 암꽃)만 보인다.
그 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수술의 꽃밥이 터지지 않아 꽃가루를 내보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성화가 아니라 암꽃이라는 뜻이다. 만약 암꽃 혼자 결실하는 것이라면 조각자나무는 무수정생식을 하는 것이고,
혹시 어느 가지에 슬쩍 핀 수꽃에서 꽃가루를 날린다면 자가수분한다고 볼 수 있다.
도통 육안으로는 수꽃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운데도 독락당 조각자나무에는 여러 개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수꽃 없이 암꽃 혼자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독락당 입구 쪽에 조각자나무가 한 그루 더 있긴 하나 그 나무 역시 같은 형태의 암꽃만 피우므로 수꽃의 역할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혹시 암꽃이 피기 전에 소수의 수꽃이 먼저 달려서 두 그루의 조각자나무가 교차수분한다면 모를까,
그 외의 조각자나무는 주변에 없으므로 독락당 조각자나무가 타가수분으로 결실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천연기념물 제115호 경주 독락당 조각자나무의 꽃과 열매
주엽나무도 조각자나무처럼 암수한그루이고 드물게 암수딴그루라고 하나 확인이 필요하다.
주엽나무는 많이 심는 데다 야생에서도 볼 수 있어 좋으나 키가 커서 확인하기 어렵다.
어쨌든 국립수목원이나 광릉숲길에 있는 주엽나무를 관찰하면 분명히 열매가 달리는 나무인데도 수꽃만 잔뜩 보인다.
그러므로 나중에 소수의 암꽃을 피워서 결실하는 웅화선숙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선운산과 문경시의 특정한 주엽나무는 열매를 잔뜩 맺는데, 그런 나무는 암꽃이 많이 피는 나무가 분명하다.
주엽나무는 조각자나무처럼 개체수가 매우 적은 것은 아니므로 무수정생식이나 자가수분 여부를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수정생식이나 자가수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수꽃이 먼저 피고 암꽃이 나중에 피는 웅화선숙을 통해 주엽나무가 암수한그루에서 암수딴그루로 진화 중인지 모른다.
쉬나무처럼 말이다. 그래서 암꽃과 열매가 전혀 없어 완벽한 수그루처럼 보이는 개체(여름정원의 주엽나무)가 존재하고,
암꽃과 열매가 아주 조금 달려 완벽한 수그루가 되어가는 개체(손으로보는식물원과 광릉숲길의 주엽나무)도 존재하며,
암꽃과 열매가 많이 달려 완벽한 암그루가 되어가는 개체(선운산과 문경시의 주엽나무)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엽나무의 꽃과 열매
‘김노’를 소개한 해외 사이트에 달린 댓글에서도 그와 비슷한 점이 확인된다.
‘김노’가 뿌리 번식도 하고 군락을 이룬다는 댓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가 자기 뒷마당에 있으므로 수그루가 분명하다는 댓글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김노’는 양성화로 자가수분하는 양성화그루가 존재한다기보다 암수딴그루로 된 후
수그루를 점점 줄이고 암그루 혼자 결실하는 무수정생식으로 전향하는 중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아직 수그루가 존재하기는 하나 수그루 없이 암그루 혼자 결실하는 왕초피나무처럼 말이다.
그러다 수그루가 완전히 도태되면 개산초나 감태나무처럼 암그루만 남아 그들만의 여인왕국, 즉 아마조네스를 구축할 것이다.
무수정생식(apomixis)하는 식물들의 암꽃
‘김노’의 위기는 오늘날 자기 열매나 종자를 옮겨줄 산포자가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김노’를 진화적 시대착오(Evolutionary anacronism)의 한 예로 여긴다는 내용이 Wikipedia 자료에 나온다.
생태적 시대착오라고도 하는 이 용어는 한때 해당 식물을 먹었던, 그러나 현재는 멸종된 거대 동물군과의 공진화로 인해
과거에 유리하게 선택되었던 식물종의 속성을 가리키는 용어 정도로 정의한다.
현재의 생태계에 서식하는 포유류에 의한 종자 분산의 거리나 효과나 감소하는 쪽으로 나타나므로 부적응을 의미한다고 한다.
실제로 ‘김노’의 꼬투리는 너무 질겨서 씹기 어렵고, 독이 있으며, 무거워서 바람이나 물로 산포하기 어렵다.
꼬투리를 작게 만드는 쪽으로 변화해야 생존에 유리하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김노’의 ‘더딘 진화적 적응’은
우리 눈에 진화적 시대착오 또는 부적응으로 비칠 수 있다.
번식 전략은 한번 전향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더욱 그렇다.
적잖은 수의 식물이 이처럼 자가수분이나 무수정생식의 방식을 택한다. 종자 산포 방식은 재빨리 바꾸지도 못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불리한 전략으로 알고 있기에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학자들은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고 애쓴다. 자가수분증후군(selfing syndrome)에 빠진 백서향에서처럼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식물이 자기 종에 유리한 방식으로 생식 전략을 펼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점이다.
유불리와 관계없이 식물은 자신들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식물 스스로가 결정해서 행하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는 경쟁과 상호작용과 공진화 등이 일어나면서 자연스러운 선택(natural selection)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결과를 우리가 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전략이 성공하면 종이 번성할 수도 있고, 실패하면 멸종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어서 어정쩡하게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전략은 자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런 쪽으로 가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기에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예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연은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끝내 멸종시키고 적응하는 종만 남기면서 계속 생존의 시험대에 올린다.
그러니 그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스러운 선택의 결과를 놓고 그럴듯한 이유를 찾으려는 학자들의 노력이 대단한 듯 가상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自然)이라는 철학적 진리 앞에 과학은 번번이 무릎 꿇린다.
참고자료
1. https://en.wikipedia.org/wiki/Kentucky_coffeetree
2. https://tnknam.tistory.com/1269
3. https://plants.ces.ncsu.edu/plants/gymnocladus-dioicus/
4. https://www.minnesotawildflowers.info/tree/kentucky-coffee-tree
5. https://www.missouriplants.com/Gymnocladus_dioicus_page.html
6. https://www.friendsofeloisebutler.org/pages/plants/kentuckycoffee.html
글쓴이
전문위원 이동혁
임업연구사 손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