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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 강진과 동백꽃
  • 입상자명 : 박순하
  • 입상회차 : 11회
  • 소속 : 일반부
  • 장르 : 일반부 시·수필
지구의 온난화 현상인가!
2월 하순경이라도 가끔 한기를 느낄 많아 꽃샘추위가 있기 마련인데, 몸에 와 닿는 바람의 입김은 포근하기조차 하다. 봄 햇살이 번져 화사한 초록 들판은 봄의 전령사가 일찌감치 다년간 것 같다. 강진과 연관된 사연이라면 '다산의 유배지' 정도의 간략한 역사적 배경만이 내 지식의 전부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후각만으로도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갯내가 은은히 풍겨온다. 청춘기를 지날 때까지 바다와 접하며 살아온 내 생의 전반부에서 해조 냄새를 어지 빼놓을 수 있으랴
물을 끼고 있는 곳은 항시 사연도 많은 법, 강진도 예사롭지 않은 고장임이 피부로 느껴졌다. 귀에 익은 노랫말, '월출산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라는 가사가 들리는 듯한 착각 속에 월출산의 위용에 잠시 눈길을 빼앗긴다. 산 앞쪽으로 넓게 펼쳐진 평야 끝엔 구강포 갯벌과 마닿는 자연환경 덕에 해산물 생산이 많다고 한다. 그 풍족함은 강진의 인심과도 직격된다.
강진 땅을 밟는 어느 시인 묵객들도 한 번씩은 둘른다는 어느 한정식 집 점심상에는 시쳇말로 육,해, 공 군이 모두 나열되었다. 예로부터 '부엌에서 인심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반찬 가짓수가 많다. 이곳 인심을 칭찬하며 상 위를 오가는 나의 눈길과 손길이 바빴다.
강진에는 일찍이 도자(陶瓷)기술이 발달하여 청자문화를 꽃피웠고, 하멜 일행이 30여 명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는 지금까지 뿌리를 내린 이도 있다니, 강진에 대한 역사 인식이며 그 고장의 진면목을 놓치고 있던 나의 무지가 드러나는 행보이기도 했다.
식후 구강포의 잔물결을 바라보며 10여 분 달리다 귤동마을에 이르러 만덕산 자락에 있는 '다산초당'을 찾았다. 이곳에서 다산은 10여 년간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활동을 했단다.
구강포가 내려다보이는 초당에는 선생이 먼 바다를 바라보며 억울함과 시름을 달랬던 정자 천일각이며 바위에 새긴 '丁'이라는 글자가 있다.
이곡은 목민심서, 경세유포, 흠흠신서 등 다산의 위대한 저술업적 대부분이 이루어졌으며, 500여 권에 달하는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기도 하다. 강진만을 굽어보며 저술했던 책들은 유배지에서 겪은 고난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실학의 대가로 후세에도 그 이름이 화자되긴 하지만, 그 당시 다산의 인간적 고독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나 감정이 다를 리는 없을 터,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유배지에서 보낸 세월의 아픔이 오죽 컸을까!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내가 벼슬살이를 못하여 발뙈기 얼마만큼도 너희들에게 물려주지 못햇으니 오직 이 두 글자 근(勤)과 검(儉)을 정신적인 부적으로 마음에 지니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라" 이른다. 다산의 체취가 묻어나는 뜰을 거닐며 그가 사색하던 장소에 서고 보니 인생의 무상함에 만감이 서린다.
나는 초당을 벗어나 만덕산의 백련사를 향한다. 백련사의 여덟 번재 주지였던 해장선사가 정약용과 교우했다는 기록이 있다. 절 입구에는 수령 260여 년의 배롱나무가 매끈한 몸과 자랑하고 비자, 후박, 푸조나무와 함께 장관을 이루는 것은 동백나무다.
천연기념물로 정해진 동백나무숲은 1.3ha에 약 1,500그루가 자란단다. 개화의 절정기는 조금 지났지만 만덕산은 온통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억겁의 세월을 지키듯 도열한 소나무 사이 오솔길 양편에도 다산의 삶과 애환이 서린 차밭이 간간 나온다.
나무 사이마다 낙화한 동백꽃이 수북이 쌓여 땅을 밟은 신발이 온톤 핏빛으로 물들었다. 생에 미련이 남아 꽃대에서 떨어지지 못하고 말라붙은 여느 꽃들처럼 추한 모습이 아니다. 낙화한 꽃을 주워 보니 마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나의 삶도 동백꽃처럼 고격하게 살다가 미련 없이 일순간에 지기를 고대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다산의 유배지, 마음이 쓸쓸했던 탓인가, 발밑에도 머리 위에도 겹겹이 쌓인 동백꽃이 아름답게 보이기보다 핏빛으로 보인 것은 아마도 그곳의 슬픈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탓이었으리라. 산기슭 곳곳에 자라고 있는 茶나무에도 다산의 손길이 느껴진다. 정한 물로 차를 끓이고 마시는 과정을 보면 나 같은 범인(凡人)은 접근하지 못할 이상세계처럼 느껴진다. 그야말로 선(禪)의 경지에 닿은 사람들의 의식 같아 보인다.
긴 유배 상황에서 정신적 위안을 茶에서 얻고 계발하여 하나의 문화로 계승 발전시킨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초의 선사를 제자 삼아 가르친 다문화(茶文化)는 지금도 예절의 효시로 삼을 만큼 후세에 전해진다. 언젠가 나 이곳에 다시 오리라. 처음 방문했던 때의 서글픔이 사라진 그때는 아마도 밝은 얼굴로 동백꽃을 맞을수 있으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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