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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천천히, 그리고 바라보면서
  • 입상자명 : 정기호
  • 입상회차 : 3회
  • 소속 : 청소년부
  • 장르 : 청소년부 글쓰기
아버지는 천천히 걷는다. 나무 사이를 고즈넉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풍류와 밤이 닳도록 울고 있는 풀벌레 울음소리, 아버지는 산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마음을 길을 걷는다.
아버지의 뒤에는 항상 아들이 걷고 있다. 아무리 봐도 아버지보다 몸무게가 덜 나갈 텐데 아들은 못내 어려운 듯 그보다도 더 무거운 다리를 찔찔 끈다. 아들은 아직 산이 낯설다.
우리 아버지는 산을 정말 좋아하신다. 계절마다 절정기에 이를 때면 발빠르게 산을 찾아 오직 절정기에만 느낄 수 있는 부서지는 아름다움을 음미하시곤 하셨다. 물론 평소에도 산은 아버지의 절정기에만 느낄 수 있는 부서지는 아름다움을 음미하시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족의 주말 나들이는 언제나 '산'으로 돌아갔고 그렇게 산과의 인연을 오랫동안 쌓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산을 알지 못했다. 여름이면 찾아가는 바다에 대해서 더 상큼한 매력을 갖고 있었고 산을 맹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며 무엇 때문에 오르는지 깨달음을 잃고 말았다. 나는 산을 잘 몰랐고 시간에 연연했다. 산을 빨리 다녀오면 그만큼 더 멋있는 일이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정상을 정복하는 것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내가 산을 탈 때면 쳐다보는 것은 정상과 시계, 단 두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빨리 지쳤고 산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곤 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나는 주말을 맞아 아버지의 제의로 다시 주말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나만의 주말산행을 맞아 상비약품을 준비하셨다. 산행의 기본은 상비약을 챙기는 것이라고 어머니께서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가족을의 건강을 책임지셨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때보다 더 신이 나셔서 콧노래까지 부르시고 계셨다.
"아빠, 이번에는 몇 미터예요?"
"음.... 한 500m 될 거다. 별로 안 힘들거야. 그런데 이번에 산에 오를 때는 특별히 이 말을 기억해라. 천천히 바라보면서!"
"알겠어요. 아빠, 우리 빨리 가요."
그 날 우리가 올랐던 산은 우리 지역에서도 가까웠던 '덕승산'이라는 곳이었다. 수덕사가 자리잡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 산을 지금까지 왜 와보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버지께서는 산에 오르기 전, 나에게 마음을 비우고 '산'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상에 가서는 선물도 준비해 놨으니 오늘은 더 기분 좋게 등산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선물' 발언이 있으신 후 정상을 향하여 더욱 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이런 내게 천천히 걸어야 선물이 안 달아난다고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걸음을 채촉하였다. 약 2시간여가 지나서 나는 정상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날씨가 정말 맑아서 인근의 지역은 천리안처럼 환히 보였다.
"아빠, 이제 선물을 주시옵소서!"
"아이구, 이 녀석은 선물 때문에 산에 오른 것 같네. 잠깐만, 여기 바위 위로 올라와 보라."
"예, 아빠 그런데 여기는 왜요?"
"선물 주려고 그러지! 자, 그럼 올라온 상태에서 눈을 꼭 감고 몸을 반대방향으로 돌려봐라."
"예..., 아빠 무슨 선물인데 그래요? 이제 눈 떠도 돼요?"
"그래, 어서 떠봐라!"
"와! 정말 멋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소리를 지른 것이었을까? 그것은 평소에도 산에 오르면 자주 보던 모습이었는데... 하지만 분명 달랐다.
"어때? 정말 멋있지? 지금 이 멋진 풍경은 아빠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아빠가 이 자리를 찾느라고 예전부터 이 산을 얼마나 돌아다녔는 줄 아니."
"정말 멋있네요. 올라올 땐 몰랐는데 덕승산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제가 무언가를 놓치고 왔다는 기분이 드네요."
"아들 녀석! 이제 철들어 가는구나.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준비한게 있단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산이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에 50번째 산이라는 것이야! 작년에 산림청에서 '2002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해서 100대 명산을 발표했거든. 그래서 아빠가 지금까지 우리가 다녀온 산 중에서 몇 개나 있었는지 살펴보았는데 절반이 다 되게 우리가 벌써 갔다 왔더구나. 그래서 오늘을 50번째 산 기념일로 삼은거야."
"와! 정말요? 우리가 벌써 50개의 대한민국 명산을 다녔으니깐 앞으로 다시 50개의 대한민국의 명산을 찾아다니자. 그리고 아빠가 보기에 우리 아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산타기를 즐기지 못한 것 같아. 오늘도 아빠가 산에 천천히, 바라보면서 올라가라고 했지? 그런데 그렇게 빨리 올라서면 어떡하니, 산은 정상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나가면서 바라보는 모습 하나하나가 다 중요한 거란다.
꼭 정상을 보지 않았더라도 산을 타면서 벌써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당장 내려와도 후회가 없는거야. 알았지?"
"예, 알겠어요. 이제는 아빠처럼 천천히, 잘 바라보면서 다닐게요."
"그래, 그러면 앞으로 남은 50개의 대한민국 명산은 꼭 그렇게 다녀오자. 그래서 우리나 100대명산을 우리의 별장을 만들자!"
그렇게 정상에서의 즐거운 깨달음의 한때를 보내고 나는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는 걸음은 오를 때보다 훨씬 가벼웠지만 나는 걸음걸음에서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천천히, 바라보면서를 잊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의 말씀대로 나는 산을 급하게 오르느라고 하나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 그렇게 아름다운 꽃이 있었는지, 바위 하나가 저렇게 절경을 이루고 있는지 미처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려오는 길목마다 나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깨달아 가며 50번째 명산을 맞아서 처음으로 산타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진정으로 느끼고 있었다. 천천히 산을 음미하는 기분을. 이제 마음으로 산을 타는 방법을. 그리고 정말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한국의 100대 명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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