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릉숲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산다. 수많은 종류의 새들과 곤충들, 멧토끼, 다람쥐, 개구리 심지어는 뱀, 고라니,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아 광릉숲을 누빈다. 동물들은 식물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며 먹이를 구하고 다른 생물들과 경쟁하면서 치열하고도 부산하게 살아간다. 사람들의 눈에는 식물들, 몇몇 날아다니는 새들과 작은 곤충들이 보이는 것이 전부겠지만 식물들 속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상호작용의 그물로 튼튼하게 엮여 있다.
이러한 광릉숲은 울타리도 없이 수목원내 전시원과 연결되고 전시원은 광릉숲의 일원이 된다. 당연하게도 광릉숲의 생물들은 전시원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동물은 깨끗한 물과 맛있는 알뿌리, 열매와 잎, 달콤한 꿀을 찾고, 식물은 더 많은 햇빛과 뿌리내릴 맨땅을 찾는다. 그래서 고라니가 맛있는 잎을 먹으려 전시원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멧돼지들이 수생식물원에 진흙 목욕탕을 만들어 놓거나 알뿌리와 지렁이를 먹기 위해 땅을 헤집어 놓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숲보다 햇빛이 잘 들어 다양한 식물들이 들어오고 식물을 먹으러 벌레들이 전시원에서 알을 깐다. 그 벌레와 갖가지 열매를 먹기 위해 새들도 모여들어 전시원에는 광릉숲 보다 더 다양한 생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그들의 세상에 끼어들었을 뿐 그들은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올 봄 안전한 곳을 찾던 곤줄박이 새 부부가 사무실의 창고 안을 며칠 동안 지켜보다 창고안쪽 깊숙이 둥지를 틀고 6개의 알을 낳았다. 창문으로 드나들며 새끼에게 열심히 먹여 결국 두 마리를 키워냈고 얼마 전 무사히 둥지를 떠났다. 작년에는 증식온실 창고 빈 화분 안에 여름철새인 노랑할미새가 둥지를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하루에 한 개씩 늘어난 알들은 모두 부화하였고 다행히 무럭무럭 자라서 광릉숲의 한식구가 되었다. 그들은 사람을 경계는 하지만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올해는 더위가 빨리 온 탓인지 작은 메뚜기 떼가 연한 싹들을 차례로 옮겨 다니며 갉아먹기도 하였고, 게다가 올해도 어김없이 황다리독나방의 애벌레 무리가 층층나무 잎을 갉아먹어 새 잎이 다시 나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그래도 식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잎을 틔우고 그들만의 생존법으로 자라난다. 햇볕이 좋은 날은 능청맞은 구렁이와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의 나들이도 가끔 볼 수 있다. 동물들은 사람 소리와 발자국의 진동으로 먼저 알아차리고 사람을 피하지만 가끔은 돌발행동을 하는 녀석도 있다. 며칠 전 소리정원의 소나무숲길에는 60cm가 넘는 꽃뱀이 멋지게 쥐를 잡아먹고는 느긋하게 햇빛을 즐기다가 관람객과 마주친 일이 있었는데, 관람객들은 신기하듯 사진 찍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 뱀에게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란 책속에 나오는 코끼리를 먹어 모자처럼 보이는 보아뱀의 이름을 따서 ‘보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가던 길을 가도록 다독여 보냈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전시원내 길로만 다닌다면 만날 기회는 거의 없지만 주의하는 것이 좋다.
전시원에는 땅을 조금만 파도 지렁이가 꿈틀대며, 세상으로 나올 때를 기다리며 잠자던 벌레들도 보인다. 두더쥐와 지렁이들이 땅속에 크고 작은 터널을 만들어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부지런한 개미들은 다양한 씨앗들을 땅속으로 옮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씨앗 퍼트리기를 돕는다. 이때 땅속에 만들어진 터널이 무너져 땅이 파이기도 하는데 길이 울퉁불퉁하다고 불평할게 아니라 땅이 건강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땅이 건강해야 건강한 식물을 키우고 그를 터전으로 삼는 동물들이 건강하다. 더불어 사람도 건강하고 즐거워진다.
수목원의 전시원내에는 동물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 가로등이 없고, 관람객에게 개방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이 정해져 있다. 관람객이 없는 시간 동안에는 전시원을 동물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다. 광릉숲에서 가장 높은 소리봉과 죽엽산 사이를 흐르는 봉선사천이 건강해야하는 이유는 광릉숲 생물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며, 두 산을 가르며 봉선사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광릉수목원로는 제한속도 30km이하로 서행해야하고 야생동물보호라는 표지판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광릉숲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이 생물들에게 있고, 이들을 보존하는 것이 국립수목원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 이다.
초여름, 관람객이 돌아간 뒤 고요와 어둠이 내리면 광릉숲에는 수백 마리의 반딧불이가 내는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어쩌면 광릉숲 깊은 곳에 있던 수많은 생물들이 전시원에 모여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앞세우고 그들만의 잔치를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